[기자의 시각] 현대중공업의 '기부한 죄'

입력 2020.05.21 03:13

김강한 산업1부 기자
김강한 산업1부 기자

현대중공업은 2012년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자 1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쉼터 건립 비용'으로 목적을 정한 지정 기부였다. 이 회사는 매년 40억~50억원을 기부했는데 그중 절반을 각종 단체나 시설에 지정 기부하고 있었다. 쉼터 건립을 위한 지정 기부도 수많은 기부 활동 중 하나였다.

2013년 초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현대중공업 측에 연락해 "서울 마포에 부지를 사기 어렵기 때문에 경기도 안성으로 부지를 옮기는 게 낫겠다"고 부지 변경 계획을 알렸다고 한다. 기부자인 현대중공업은 기부 목적에 맞는다면 부지 변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런데 최근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전 정의연 이사장)의 지인에게 주변 시세보다 3배 높게 안성 건물을 매입한 배경을 놓고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현대중공업의 기부 행위까지 덩달아 구설에 오르고 있다. 한 현대중공업 임원은 "기부 당시엔 정의연이 지금과 같은 의혹을 받는 단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부도, 부지 이전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위안부 할머니를 돕기 위해 기부금을 내고도 정의연 때문에 오물을 뒤집어쓴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을 더욱 황당하게 만든 것은 윤 당선인의 태도다. 궁지에 몰린 그는 지난 18일 오전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안성에 있는 건물을 매입한 이유에 대해 "현대중공업이 처음에 (마포구) 박물관 옆 건물에 대한 예산 책정을 잘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돈을 조금밖에 주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다.

사실 현대중공업은 돈을 조금만 준 게 아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내부 규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지정기부금의 경우 한 단체에 연간 10억원을 초과해 지원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이 규정에 따라 지정기부금의 최대 금액을 냈는데도 윤 당선인으로부터 '돈을 적게 준 대기업'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다. 또 현대중공업은 기부금을 낸 이후 이를 관리할 법적 권한도 없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에 따라 공동모금회가 돈을 받아 관리·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대중공업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이 여당 소속 당선인과 진실게임을 벌이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윤 당선인은 이를 노려 '현대중공업 탓'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2018년 국내 500대 기업이 낸 기부금은 3조원에 달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의연처럼 누군가 이 막대한 돈을 사적 용도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조사해 비리를 밝히고 기부금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내고도 억울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대기업들은 기부에 소극적인 자세로 바뀔 수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