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말라리아 치료제가 기존 치료법보다 낫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해외에서 잇따라 나왔다. 오히려 심장에 이상을 가져올 우려가 더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 가지 치료법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말라리아약 코로나 치료 효과 논문, 근거 없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코로나에 대한 기적의 치료제로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란 샤히드 바헤스티 의대 과학자들은 지난 20일(현지 시각) 의학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최근 주목을 받은 프랑스와 중국 연구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하이드록실클로로퀸의 효과를 확인한 6편의 연구결과를 분석했다. 이 논문들은 모두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기존 치료법을 비교했다. 하지만 모두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복용이 더 나은 효과를 냈다고 볼 만큼 통계적인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고 이란 연구진은 밝혔다.
과학자들은 말라리아 치료제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포 침투를 막고 환자의 과도한 면역반응을 억제한다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를 보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복용하면 폐가 더 깨끗해지는 효과가 있었고 바이러스의 유전물질도 일부 감소했다. 하지만 이와 함께 발진과 두통 같은 부작용도 동반됐다. 연구진은 말라리아 치료제가 코로나에 효과가 있을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연구한 환자가 너무 적다고 밝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클로로퀸과 그 부산물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코로나 치료제로 긴급 사용 승인을 허가했다. 하지만 말라리아 치료제의 효과를 의심하는 사례가 보고됐다. 버지니아대 연구진은 지난달 9일부터 이달 11일까지 보훈병원에 입원한 남성 코로나 환자 368명을 분석한 결과를 21일 메드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역시 기존 치료를 받은 사람보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복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말라리아 치료제와 항생제인 ‘아지트로마이신’을 같이 복용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진은 오히려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복용자에서 사망자가 더 많았다고 밝혔다.
368명의 환자 중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복용한 환자 97명의 사망률은 27.8%였다. 약을 복용하지 않은 158명의 환자들은 11.4%의 사망률을 보였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아지트로마이신을 함께 쓴 환자들의 사망률은 22.1%였다.
브라질에서는 클로로퀸과 아지트로마이신을 동시에 코로나 환자 81명에게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다가 지난 16일 두 약을 고함량으로 투여한 그룹에서 사망자가 늘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면서 바로 중단했다. 이후 임상시험 연구자들은 고소에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세포 이온 통로 차단해 부정맥 유발 우려 전문가들은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심장박동을 불규칙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으며 심하면 심정지까지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메이요 병원은 지난달 25일 코로나 환자에게 부정맥이 나타나면 말라리아 치료제 복용을 중단하도록 지침을 발표했다.
미국 메이요 병원의 마이클 애커만 박사는 21일 사이언스지 인터뷰에서 “말라리아 치료제의 부작용은 드물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환자를 대상으로 수십 년간 약이 효과를 봤다는 사실을 근거로 코로나 환자에 대한 위험도를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환자가 다르므로 이전 임상 결과로 말라리아 치료제가 코로나 환자에게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하이드록실클로로퀸 임상시험을 하는 반더빌트대의 웨슬리 셀프 박사도 “미디어에서 말라리아 치료제가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는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잠재적인 환자 수백만 명을 치료한다고 하면 드문 부작용이라고 매우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심장 근육세포의 전기를 띤 입자인 이온이 오가는 통로를 차단해 부정맥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생제 아지트로마이신 역시 이온 통로를 차단한다. 앞서 프랑스 연구진은 두 약을 동시 복용하면 하나만 복용할 때보다 더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를 없앴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대의 대니얼 프리토-알함브라 교수는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프랑스 연구는 제대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며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자료를 근거로 결정하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오히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지난 10일 메드아카이브에 6개국에서 100만명의 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임상시험을 분석했다니 아지트로마이신을 동시 복용하자마자 심혈관 사망자수가 두 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명경재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 단장(울산과기원 생명과학부 특훈교수)도 최근 인터넷에 올린 ‘코로나19 과학리포트’에서 “클로로퀸이 코로나에 효과가 있다는 중국 연구진의 보고는 정확한 데이터가 공유되지 않았다”며 “프랑스에서 발표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코로나 치료 효과에 대한 보고 역시 대조군이 정확하지 않아 결론을 내리기에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명 단장은 “클로로퀸은 심한 설사, 청각손실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심장에 심한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내에선 코로나 예방 임상시험, “효과 단정 어려워”
국내 에서는 클로로퀸이 코로나 감염증 예방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임상시험이 이뤄졌다. 22일 삼성서울병원·부산대병원 감염내과 공동 연구진은 “부산의 장기요양병원 입원 환자 184명과 간병인 21명에게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코로나 예방 목적으로 투여했더니 14일간 투약 끝난 후 모두 음성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인 ‘국제화학요법학회지’ 최신호에 발표됐다.
다만 연구진은 적절한 대조군이 없었던 점 등을 들어 이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효과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약물 부작용도 나타났다. 투약 기간 중 32명에게서 설사, 묽은 변, 발진, 위장관 장애, 느린맥박 등 이상 증상이 관찰됐다. 5명은 약물 부작용으로 중도에 투여를 중단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아직 코로나 예방용으로 이 약물을 투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위험 환자들을 대상으로 국내에서 선제적으로 임상연구가 이뤄진 건 성급했다는 지적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