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서부텍사스산원유)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일부 국내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마이너스 유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가 발생해 투자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20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WTI는 -37.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WTI 가격은 한국 시각으로 21일 오전 3시 9분쯤 마이너스권에 진입했는데 국내 증권사의 HTS 다수가 마이너스 가격 주문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상품의 가격이 마이너스가 되는 이례적인 상황을 HTS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투자자는 "가격이 마이너스권에 진입한 이후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었고, 결국 큰 손실을 떠안게 됐다"고 항의하고 있다.
특히 개인 투자자 주식시장 점유율 1위인 키움증권이 가장 많은 고객 항의를 받고 있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HTS가 마이너스 가격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매매가 중단됐다가 (본장 마감 시간인) 오전 3시 30분 강제 청산이 이뤄졌다"며 "피해 사항을 확인해 규정대로 보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한국투자증권, KB증권 등의 HTS에서도 마이너스 가격 주문이 안 들어가는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다. 한투 관계자는 "문제 발생 후 바로 조치해 오전 5시부터 거래가 정상화됐다"고 했고, KB증권 관계자는 "시스템 오류 당시 다행히 주문을 낸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피해 고객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해당 증권사들은 문제 발생 후 마이너스 가격 주문이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모두 손 본 상태다. 이 밖에 미래에셋대우, 메리츠증권, 대신증권, 신한금융투자, 교보증권 등 다른 증권사들의 경우 유가가 마이너스권에 진입하기 전 '원유 5월물' 청산이 모두 이뤄져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한편 최근 과열 양상을 보여온 원유 선물 관련 ETN(상장지수증권)은 이날 마이너스 유가 영향으로 10~30%대 폭락세를 보였다. 삼성증권 전균 수석연구위원은 "기초 자산과 시장 가격 간 괴리율이 아무리 벌어진다고 해도 유가가 떨어지는데 시장가격이 오르기는 어렵다"며 "산유국 갈등, 세계경제 상황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유가를 전망해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