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록적 與 압승, 전례 없는 이 힘을 국민 위한 정책 전환에 쓰길

조선일보
입력 2020.04.16 03:26

21대 총선이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기록적인 압승으로 끝났다. 이 정당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이 거세게 몰아쳤던 2004년 총선에 이어 두 번째다. 민주당은 텃밭인 호남 전 지역을 싹쓸이하고 전국 의석의 절반 가까운 수도권을 완전히 석권하다시피 했다.

여당의 압승엔 모든 총선 이슈를 블랙홀처럼 집어삼킨 코로나 사태가 도움을 줬다. 국가적 위기 국면에선 집권 세력에 힘을 모아줘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한 데다 뒤늦게 확진자가 쏟아져 나온 미국, 유럽과의 대비 효과 덕을 봤다. 코로나 검진 키트를 조기 개발한 민간업체와 우수하고 헌신적인 의료진과 간호 인력, 전 국민이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 시스템의 역할이 컸지만 이를 조율하고 지휘한 정부의 공(功)도 크다. 국민이 이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효과만으로 정권의 이 기록적인 대승을 설명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접어든 시점에 치러진 선거에서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두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야당의 지리멸렬에 있다. 불과 3년 전에 국민으로부터 퇴출 명령을 받고도 이렇다 할 쇄신 노력 없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선거에 임한 야당에 대한 유권자의 거부 반응이 그대로 정권의 반사이익으로 나타났다. 지금 3040세대의 많은 유권자는 "문재인 정권도 잘한 것이 없지만 통합당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민주당, 시민당, 정의당, 열린우리당까지 포함한 범여권 정당들은 국회 선진화법을 뛰어넘어 모든 안건을 단독 처리할 수 있는 180석 내외를 차지하게 됐다. 범여 정당들이 이번 총선 결과를 자신들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 신임으로 해석하면 국정을 마음대로 일방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현 정권은 정부, 지방자치단체, 사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싹쓸이로 장악하게 됐다. 유권자들이 여권에 압승을 안겼지만 이 무소불위의 권력에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도 적지 않다.

국민이 이렇게 한편으로 불안한 것은 압승한 권력이 3년간 보여준 무능과 폭주 때문이다. 기업 하는 사람들 입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비명이 나오고 대통령 면전에서 자영업자가 "경기가 거지 같다"고 한탄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덮치면서 경제가 더 이상 버텨낼 수 있겠느냐고 상당수 국민이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총선이 경제 정책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경고음을 울려주기를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만일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총선 승리를 여태까지 벌여온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인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경제는 심각한 사태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코로나 안개로 가려진 울산시장 선거 공작, 조국 사태 같은 불법 사건도 총선에서 이겼다고 해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범여 정당들이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인 공수처 신설로 윤석열 검찰팀이 진행해온 수사를 가로막으려 한다면 국민 분열은 다시 심각해질 것이다.

힘이 없는 정권이 겉으로 강하게 나가고 힘이 있는 정권이 유연한 경우도 있다. 이번 선거로 현 정권은 민주화 이후 어떤 정권도 갖지 못했던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됐다. 당분간 맞설 야당도 없다. 2년 후 대선도 크게 유리한 위치에 올라섰다. 그렇다면 이 커다란 힘과 여유를 국민을 위한 정책 전환에 사용해주길 바란다. 경제는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것처럼 위태한 국면이고, 외교 안보는 사방에 도움을 구할 곳이 없을 정도로 외로운 처지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의 경직된 태도에서 벗어나 유연한 정책 전환을 시도한다면 국민의 더 큰 지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