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머뭇거리다간 2008년 일본꼴 난다… 기업부터 살려라"

입력 2020.03.30 03:24

[코로나 팬데믹] 코로나발 위기 전망과 대책… 세계 경제 석학 긴급 인터뷰

글로벌 경제가 코로나 바이러스발(發)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동시다발적 경제 충격이다. 미국에선 일주일에 실업자 300만명이 쏟아졌고 글로벌 증시는 폭락을 거듭한다. 코로나가 경제에 입히는 상처는 어느 정도이고 여기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아베노믹스' 설계자인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 시장 전문가인 스티븐 로치 전 모건스탠리 회장(아시아 지역), 거시·국제경제 석학인 모리스 옵스펠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인터뷰했다.

[월가의 아시아통 스티븐 로치 교수]

유동성만으론 해결 못해… 공중보건 시스템 갖추는게 최우선 과제
코로나 확산세 잡히면 늦어도 연말 경제 회복

스티븐 로치 교수

"코로나 확산이 진정되더라도 세계 경제의 '근본적인(fundamental) 회복'은 쉽지 않을 겁니다."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스티븐 로치(75)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향후 세계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통계적인 회복'에 그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지역 회장을 지낸 로치 교수는 '아시아통'으로도 손꼽히는 경제 전문가다.

로치 교수는 이미 취약했던 세계 경제 기반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충격이 더해지면서 '강력하고 이례적인 글로벌 리세션(경기 침체)'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 경제는 지난해 하반기 소비세 인상으로 경기 둔화를 겪고 있었고, 프랑스와 독일의 산업 활동도 비정상적으로 약세였다"며 "중국도 지난해 27년 만에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을 나타냈으며, 매우 강력해 보이는 미국 역시 작년 4분기 성장률이 2.1%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무제한 양적 완화'를 선언하는 등 각국 중앙은행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로치 교수는 "중앙은행은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메인 기관이 아니다"라며 "중앙은행의 모든 대책은 결국 시장에 유동성(자금)을 공급하는 일인데, 현재 소비와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된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유일한 해결 방법은 세계가 하나로 뭉쳐 바이러스 자체를 통제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튼튼한 공중 보건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경제보다 중요한 최우선 과제이며, 이를 위해 막대한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고 했다. 로치 교수는 코로나 확산세가 잡힌다면 올해 하반기, 늦어도 연말까지는 세계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근본적인 회복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로치 교수는 이번 코로나 사태가 세계화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세계 최대 생산국인 중국은 사회 안전망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는 대신 비용을 절약해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고,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은 중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해 가계 구매력을 확대해왔다. 로치 교수는 "이것이 바로 성장의 질적 차원을 무시하고 경제성장의 속도와 양을 극대화하는 악마적인 세계화 협약"이라며 "결국 사회 안전망이 취약한 중국에서 촉발된 보건 위기가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리고 글로벌 리세션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는 "이번 위기는 세계에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고 알리는 모닝콜과 같다"며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는 새로운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아베노믹스 설계한 하마다 고이치 교수]

한국만 돈 푸는데 주저하면 피해 몰릴 것
日도 2008년 꾸물대다 환율 120엔서 70엔대로… 우량기업까지 회복 불능

하마다 고이치 교수

"한국 당국은 쓸 수 있는 모든 금융·재정 정책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재정건전성 훼손 등을 이유로 시간 끌다가는 미래 세대에 물려줄 자산 자체가 무너질지 모릅니다."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84) 예일대 명예교수는 "과감한 금융정책(양적 완화)으로 시장 불안,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마다 교수는 2012년 말 아베 총리가 취임한 이후 총리실 고문(내각관방 참여)으로 아베노믹스의 틀을 짠 인물이다.

그는 "방역(防疫)이 최우선이고 정책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면서도 "각국이 무제한적 돈 풀기에 나서고 있는데 한국만 머뭇거린다면 경제적 피해가 한국에 몰릴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코로나 사태 초기엔 중국과 인접한 한국의 타격이 컸지만, 최근 뉴욕타임스에서도 '코로나 방역 우등생'으로 묘사하는 등 한국에 대한 외부 인식이 달라진 점에 주목한다"고 했다. 단기적으론 한국도 피해가 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외 이미지가 오히려 개선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삼성전자 같은 뛰어난 기업이 버티고 있는 한 국가적 매력은 여전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양적 완화(돈 풀기)에 강력히 나설 것을 주문했다.

오히려 그는 코로나 사태가 확산 중인 미국을 우려했다. "엄청난 재해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자국 통화가 약세가 돼야 하지만, 미국은 재해와 달러 강세라는 '이중 펀치'를 맞고 있는 형국"이라고 했다. 주가 폭락 때 주가와 반대로 오르는게 일반적인 미국 국채 값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도 "미국 경제에 대한 시장의 불안이 커졌다고 보면 된다. 큰 그림에서 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했다.

하마다 교수는 2008년 리먼 쇼크 이후 일본의 실책을 한국이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당시 일본은행이 빨리 양적 완화에 나서지 않는 바람에, 달러당 120엔 수준의 환율이 2010~2013년에 70~80엔대까지 떨어져 건실한 일본 기업들까지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책 당국의 판단이 잘못된다면, 리먼 쇼크 이후 일본 기업이 당한 수난을 한국 기업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 정부가 금융 정책과 재정 정책을 명확히 구분해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 정책(양적 완화)은 무제한으로 펼치되, 재정 정책은 국제 관계를 판단해 시행하는 게 좋다"고 했다. 미국·일본이 대규모 재정 정책을 쓰면 풀린 돈의 일부가 한국으로 흘러들 수도 있기 때문에, 한국이 재정 정책을 세울 때 미국·일본 등과 협력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오바마 수석 고문 지낸 모리스 옵스펠드 교수]

"항공사부터 바텐더까지 전방위적인 지원 필요
과거의 규모·속도론 코로나 충격 못줄여… 지금은 부작용 생각말라"

옵스펠드 교수

"거대한 기업부터 구멍가게 주인까지, 전방위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할 때입니다. 과거와 비슷한 규모·방식·속도론 코로나발(發) 경제 위기의 충격을 줄일 수 없습니다."

모리스 옵스펠드(68)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국적 항공사부터 동네 바텐더까지, 경제의 모든 구성원이 정부의 도움 없이 고통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 거시경제 분야 수석 고문을 지낸 국제·거시경제 전문가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 경제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충격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이달 중순 즈음부터 세계 경제는 이미 심각한 불황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2008년) 금융 위기 때와 비슷한 불황이군'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너무 낙관적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금융 위기 당시 세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0.1%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는 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경제에 거대한 '급정지(hard stop)'를 초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주요국들이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경제활동을 접어버리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세계가 금융 위기 당시 연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9%(2011년)까지 하락했던 그리스와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험하지 못한 경제 충격에 맞닥뜨린 정부와 중앙은행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옵스펠드 교수는 대처 또한 유례없는 속도와 규모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러스 위기가 금융 전반의 붕괴로 번지지 않도록 정부와 중앙은행은 가능한 수단을 있는 힘껏 총동원해서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며 "(막대한 돈 풀기) 이후의 부작용을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경제 반등이 언제쯤 가능할지에 대해선 '최소한 6개월'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방역과 경제 모든 측면에서 과감하게 대응해 구체적 성과를 내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의 얘기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 충격은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대기업보다는 소상공인 등 사회적 약한 고리에 더 압도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옵스펠드 교수는 "정부 지원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그 무게는 경제적 약자에게 실리는 것이 맞는다"고 강조했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사회에 극심한 양극화라는 흉터까지 남는다면 사회 불만이 폭발하고 정치까지 더 큰 분열로 치달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더 길고 깊은 위기로 빠져들 위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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