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감자, 1분이면 매진… 마스크처럼 5부제 할까요?

입력 2020.03.21 03:00

[아무튼, 주말]
떨이 판매에 주문 폭발… 직접 포장해보니

지난 17일 강원 홍천군 내면에 있는 감자 농가에서 기자가 감자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7일 강원 홍천군 내면에 있는 감자 농가에서 기자가 감자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광진구, 강원 원주시, 대전 유성구…. 갓 뽑은 택배 송장에는 전국 주소가 빼곡했다. 이날 '감자 대전' 승리자들이다. 감자 10㎏ 한 상자가 배송비 포함 5000원. 하루에 풀리는 물량은 딱 1만 상자다. 매일 오전 10시, 컴퓨터와 휴대폰을 앞에 둔 수십만 명이 이 전쟁에 뛰어든다. "금일 수량이 모두 판매되었습니다." "주문 완료됐습니다." 100대1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이 전쟁은 1분도 안 돼 결판이 난다. 100만명이 주문 사이트에 동시 접속한 지난 12일, 서버가 마비됐다. 10시 1분이 되면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감자를 구한 사람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구매 버튼도 못 봤어요." "강원도 감자도 5부제 합시다." "'포케팅' 성공한 분 계시나요?" '포케팅'은 '포테이토(potato·감자)'와 '티케팅'을 합한 말.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10일간 강원도 감자 7만8000 상자, 780t이 팔렸다.

"얼른 송장 붙여주세요!" 묵직한 감자 상자가 눈앞에 가득 쌓였다. 허둥대며 송장 스티커를 붙였다. 한 단에 8개씩, 12단을 쌓은 '감자 탑'을 지게차가 옮긴다. 감자가 가득한 이곳은 강원 홍천군 내면 농협 창고다. 이날 감자 판매 사이트에서 팔린 8000상자 중 5000상자(50t)가 내면 출신이다. 하루에 한 대당 1500상자를 싣는 트럭 4대가 나간다. 일요일도 쉬지 않고 포장해 부친다. 강원도는 "코로나 사태로 팔리지 않은 감자가 1만1000t 가까이 쌓였다"며 '떨이'를 시작했다. 17일 강원도 감자밭으로 '아무튼, 주말'이 갔다.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강원도 감자를 찾아서.

봄 감자 나오기 전 다 팔아야 해

지난 17일 강원 홍천군 내면. 굽이진 고개를 올랐다. 구름 같은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탓에 천천히 차를 몰았다. 서울에서 차로 2시간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마을은 아직 겨울이었다. 해가 떴는데도 기온은 1도 안팎. 홍천군 내면은 여름에는 오이를, 가을에는 감자를 키우는 해발 700m 고랭지(高冷地)다. 강원도 전역의 감자 1만1000t 중 평창 농가에 3815t, 홍천 농가에 2500t이 있다.

감자밭 옆에 지은 감자 창고 겸 작업장에 들어갔다. 작업장에서는 20명 정도가 일하고 있었다. "이 정도 작업장이면 호텔이지요. 지붕 없이 밭에서 포장하는 집도 있거든요." 감자밭 주인 이광석(60)씨가 말했다. 산처럼 쌓인 감자를 10㎏ 상자에 담으면, 테이프로 붙여 포장해 차곡차곡 쌓는다. 기자는 상자에 감자를 넣는 일을 맡았다.

"이 감자는 색이 까만데 썩은 건가요?" 상자에 감자를 쓸어 담고 있던 '선배님'을 불렀다. 그가 창고 전등 빛에 감자를 비춰 봤다. "안 썩었네요. 담아도 돼요." 그가 말했다. 창고에 있던 감자들을 꺼내 1차로 싹을 다듬고 썩은 감자를 골라냈는데도 싹이 나고 까만 감자가 많았다. 마트에서 보던 노랗고 반들반들한 '햇감자'와 달랐다. 이 고랭지 감자는 '저장 감자'이기 때문이다.

저장 감자는 지난해 4월 심어 9월 수확했다. 반년 가까이 토굴·저온 창고 등 저장고에서 겨울을 났다. 햇감자를 기대하고 상자를 열다간 실망할 수 있다. 내면 농협 김학진 팀장은 "저장 감자라 거무스레하고 요즘 기온이 올라 싹도 났다. 어두침침한 작업장이 많아 상처 난 감자가 상품에 들어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①내면 농협 창고에서 기자가 전국으로 배달되는 감자 택배 송장을 붙이고 있다. ②지난 18일 강원도 감자 판매 사이트에서 1만 상자가 1분 만에 매진된 뒤 올린 안내문.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홈페이지 캡처
①내면 농협 창고에서 기자가 전국으로 배달되는 감자 택배 송장을 붙이고 있다. ②지난 18일 강원도 감자 판매 사이트에서 1만 상자가 1분 만에 매진된 뒤 올린 안내문.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홈페이지 캡처
감자 한 알에 100원꼴

"도지사님, 너무 싸게 파는 거 아닌가요. 농가에 돌아갈 몫이 있나요." 최문순 강원도 지사에게 네티즌들이 걱정하는 댓글을 달았다. 최 지사는 '감자 파는 도지사'로 소셜미디어 계정 이름을 바꾸고 감자 판매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10㎏ 상자에 50개 안팎 감자가 들어가니 감자 한 알에 100원꼴. 강원도 측은 5000원이 전액 판매자(농가)에 전달된다고 답했다. 강원도청 친환경농업과 이기영 계장은 "택배비 2500원, 상자 값 950원과 카드 수수료를 강원도에서 지원한다. 강원도의 감자 산업 육성 사업 예산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감자 농가들은 겨우내 하던 마음고생을 끝내고 올해 농사 준비를 시작했다. "이틀만 더 작업하면 지난해 감자는 다 처분하니 홀가분하죠. 저온 창고 없는 농가는 더 미룰 수가 없거든요." 이씨가 비어가는 창고를 보며 말했다. 지난해 수확한 300t 중 이번 행사로 70t을 판매하며 이씨는 지난해 감자 농사를 마무리했다. 4월이 저장 감자 판매의 마지노선이다. 날이 따뜻해지며 봄 감자가 남쪽 지방에서 올라오고 저장 감자엔 싹이 나는 시기다. 고랭지 감자 파종은 4월 15일 시작한다.

"5000원이라는 가격은 서운하다"는 농가도 많다. 내면 작목반장 박우식(66)씨는 "더도 말고 7000원 정도에 팔았으면 좋았겠지요. 눈앞에서 치우니까 속이 시원하긴 합니다"라고 했다. 박씨는 "감자밭 한 평에서 감자가 10kg 정도 나온다. 평당 생산 비용이 5000원 이상이라 5000원을 받으면 딱 인건비 정도 된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일꾼들 품삯은 남자 11만원, 여자 8만원이다.

도미노처럼 낮아지다 코로나로 터졌다

강원도 감자가 이렇게 안 팔린 이유는 뭘까. 내면에서 만난 한 농민은 "10년간 이렇게 안 팔린 적이 없었다. 재앙 수준"이라고 했다. 표면적 원인은 코로나다. 강원도 측은 "외식 불황과 학교 식재료 감소로 고통받는 강원 감자 농가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했다. 저장 감자는 업소용 음식 재료로 많이 팔리는 편이기에 타격이 컸다. 김종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곡물관측팀장은 "감자는 출하 시기에 따라 6월에 나오는 노지 봄 감자, 9월에 나오는 고랭지 감자, 가을 감자, 연초에 나오는 시설(비닐하우스) 감자로 나뉜다. 고랭지 저장 감자는 식자재 업체로 많이 판매된다. 마트로는 햇감자가 나간다"고 했다.

근본적 원인은 과잉 생산으로 인한 '감자 도미노 게임'이다. 지난해 고랭지 감자는 대풍(大豐)이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고랭지 감자 생산량은 13만9676t으로 2018년보다 52% 늘었다. 2005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다. 전국 고랭지 감자 99.1%가 강원도에서 나왔다. 문제는 지난해 노지 봄 감자 생산량도 많았다는 것. 김 팀장은 "2018년 감자 가격이 높았다. 감자 농가에서 2019년 재배 면적을 늘렸다. 풍년이 들면 오히려 가격이 폭락해 농가가 손해를 보는 '풍년의 역설'까지 더해 '생산량 쇼크' 수준이 됐다. 도미노처럼 감자 값이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이성호 내면 농협장은 "내면 농가 창고에만 감자 1500t이 쌓여 있다. 10㎏ 상자 15만개 분량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감자 팔아주기 운동을 진행했다. 평년이라면 3월 중순엔 판매를 마쳤을 물량"이라고 했다.

이번 판매가 올해 감자 시장에 또 다른 도미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 팀장은 "지금 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사는 시설 감자는 생산 비용이 많이 들어 단가가 높다. 감자 수요가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저장 감자가 파이를 늘리게 되면, 다른 감자들이 피해 아닌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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