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에 봄이 왔건만 예년의 봄이 아니다. 다음 달 열려야 할 ‘창덕궁 달빛 기행’은 우한 코로나 여파로 취소됐다. 묶인 발 대신 스토리 여행을 떠나본다. 최근 ‘창덕궁, 왕의 마음을 훔치다’를 펴낸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가 ‘우리가 몰랐던 창덕궁의 비밀’ 세 가지를 들려줬다.
①금천교는 일제가 의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궐 안으로 들어서면 가운데가 불룩한 돌다리가 나온다. 보물 제1762호인 금천교(錦川橋). '비단처럼 아름다운 개울을 건너는 다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금천교 방향이 삐딱하게 틀려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 교수는 "현재 금천교는 진선문에서 약간 서북쪽으로 비스듬히 자리해 있는데 일제가 의도적으로 방향을 틀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 두 장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장엔 금천교가 진선문과 일직선으로 놓인 반면, 다른 사진에는 진선문이 철거된 후 구황실재산관리총국이 들어서 있는 상태로 다리가 틀려 있다. 신 교수는 "진선문을 허물고 구황실재산관리총국을 세운 시점 사이에 지금 같은 모습으로 변형돼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2001년 발굴 조사에서도 북쪽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일제가 왜곡한 금천교를 지금이라도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②사라져버린 부용정의 절병통
후원에 있는 아름다운 정자 부용정(芙蓉亭)에 대한 일화도 있다. 부용정 지붕 꼭대기엔 대나무 마디처럼 보이는 호리병 같은 게 있는데 절병통(節甁桶)이라 부른다. 신 교수는 "2012년 창덕궁관리소장으로 와서 보니 절병통이 없었다. 200년 전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에는 부용정 꼭대기에 절병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없어진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부용정과 같은 시기에 만든 쌍둥이 정자 '방화수류정'이 수원 화성에 있다. 화성성역의궤에 상세히 제시된 방화수류정의 절병통 제작 도면을 근거로 부용정의 절병통을 복원할 수 있었다."
③와룡매가 고향에 돌아온 사연
선정전 앞마당엔 '와룡매(臥龍梅)'라 불렸던 매화나무가 있었다. 홍매화·백매화 두 그루가 길게 누워 자라는 모습이 엎드려 있는 용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볼 수 없다. 와룡매가 사라진 건 임진왜란 때인 1593년. 센다이번의 영주 다테 마사무네가 이 와룡매를 뽑아 일본으로 가져가 버렸다. 신 교수는 "일본 무사들은 매화를 신의의 상징으로 여겼으니 고귀한 자태의 와룡매가 탐났을 것"이라고 했다. 다테 마사무네는 1604년 와룡매를 가문의 절인 즈이간지(瑞巖寺)에 옮겨 심었다.
400여년 후, 와룡매 후손이 고향에 돌아왔다. 1999년 즈이간지의 129대 주지 스님이 와룡매의 가지를 접목해 얻은 후계목을 서울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한 것. 스님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참회의 뜻”이라고 밝혔다. 돌아온 와룡매 두 그루는 지금도 안중근의사기념관 앞 중앙분수대 양옆에서 나란히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