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의 로맨스… 꼭 사람만 사랑할 필요 있나요

조선일보
입력 2020.03.11 03:00

[미우라 시온]
소설 '사랑 없는 세계' 작가
식물을 사랑하는 주인공으로 색다른 '삼각 로맨스' 보여줘

"취미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이 인간을 지탱하는 힘"

비혼 인구가 늘어나는 요즘 시대와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소설 '사랑 없는 세계'(은행나무)의 주인공인 식물학 연구원 '모토무라'는 자신이 연구하는 식물들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 모토무라를 좋아하는 남자는 애가 탄다. 졸지에 식물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기묘한 '식물학 로맨스'가 펼쳐진다. 모토무라는 "사랑 같은 게 없어도 빛과 물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는" 식물의 세계를 동경한다.

미우라 시온은 '실제로 소설에는 쓰지 않더라도 등장인물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를 온 힘을 다해 상상한다'고 했다.
미우라 시온은 "실제로 소설에는 쓰지 않더라도 등장인물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를 온 힘을 다해 상상한다"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서면으로 만난 작가 미우라 시온(44)은 "마치 식물과 연애를 하는 듯한 연구원들을 보고 식물이 사랑의 라이벌이 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했다. "인간이 사랑하는 대상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겠구나 싶었어요. 맛있는 요리나 독서에 몰두해서 '인간과 연애를 할 때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초식남·초식녀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남자든 여자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저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요. 많은 여성이 경제적 자립을 하고 있고, 남녀 모두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오히려 누구나 살기 편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미우라 시온은 일본에서 나오키상(2006)과 서점대상(2012)을 모두 받은 최초의 작가다. 국내에서는 영화 '행복한 사전'의 원작자로 알려졌다. 사전편집부를 다룬 원작 소설 '배를 엮다'는 서점대상을 받으며 140만부가 팔려나갔다. 그의 소설 속 직업 세계는 일하는 이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존경심이 담겨 있다. 미우라 시온은 직업 세계를 다루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배우게 된다"고 했다. "사전 편집자들은 거리를 걷거나 TV를 보다가도, 생소한 단어나 표현이 들리면 그 자리에서 메모하고 찾아보더라고요. 일상생활은 가능할까 걱정되기까지 했죠."

신작 '사랑 없는 세계'도 도쿄대 식물학자 연구실을 방문해 취재했다. 씨 뿌리는 일을 돕고 온실 구석구석을 견학했다. 풍부한 취재를 바탕으로 작은 세포 하나에서도 우주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수한 인물들을 그려냈다. 식물학을 알린 공로로 일본식물학회 특별상까지 받았다.

그는 "식물을 채취해서 먹거나 나무를 가구로 만들 때도 경외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말을 못한다고 예의 없이 굴면 자연에 큰 보복을 당할 수 있죠. 식물은 약자를 무시하고 짓밟는 행동이 옳지 않다는 걸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역설적으로 식물학 연구실은 사랑이 넘치는 세계였다. 식물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 모토무라는 "취미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미우라 시온도 소설을 쓰면서 식물 연구에 자주 쓰이는 식물인 '애기장대'에게 푹 빠졌다. "길가에 있으면 못 보고 지나쳐버릴 듯한 수수한 풀인데요. 인간의 눈에는 수수하게 비치는 풀도 의연히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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