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AI시대의 전략] AI의 창작품, 인간의 예술성에 도전장 던졌다

조선일보
  • 김정호 KAIST 전기 전자공학과 교수
입력 2020.02.19 03:13 | 수정 2020.02.19 04:03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 뉴욕 크리스티 경매서 5억원에 팔려
모방→변형→융합→창조 단계 거치며 고유한 창작 능력 갖춰
음악과 미술, 문학 융합도 가능… 인간의 영역에 끝없는 도전

김정호 KAIST 전기 전자공학과 교수
김정호 KAIST 전기 전자공학과 교수

2018년 10월 19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인공지능'이 그린 인물 초상화가 43만2500달러(약 5억1500만원)에 팔렸다. '에드몬드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라는 이름이 붙은 이 그림은 프랑스 연구팀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그린 그림으로, 역사상 최초로 크리스티 경매에서 거래된 '인공지능 그림'이었다. '작가의 서명'란에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표현하는 '비용함수(Loss Function) 수학 공식'이 적혔다. 수학 공식이 작가 서명을 대신한 것이다. 이 경매장 맞은편에서 진행된 경매에선 '앤디 워홀 (Andy Warhol)'의 작품이 7만5000달러에 팔렸다.

인공지능은 어떻게 창작하나

인공지능 창작 작업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창작 알고리즘은 '적대적 생성 신경망(GAN·Generative Adversary Network)'이다. 2014년 인공지능 과학자 이언 굿펠로(Ian Goodfellow)가 발표한 논문에 처음 소개된 이후 폭발적 관심과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이 알고리즘은 우선 모방을 통해 학습한다. 알고리즘은 모방 작품을 만드는 생성망(Generator Network)과 제작된 모방 작품과 진품을 구별해내는 판별망(Discriminator Network)으로 구성된다. 한쪽은 모방을 통해서 속이려 하고, 다른 쪽은 진품을 감별해내려 한다. 모방과 판별을 통한 일종의 변증법적 학습 모델이다. 이런 과정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진품 못지않은 작품을 만들어 낼 능력을 갖게 된다.

인공지능이 처음엔 모방을 통해 작품을 만들지만 다음 단계에서는 변형과 융합을 통해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으로 모방 학습을 한 인공지능에 인물이나 풍경 사진을 보여주면 고흐 화풍으로 그려낸 작품을 만들어 낸다. 피카소 화풍과 고흐 화풍을 학습한 인공지능에 두 화가의 화풍을 섞은 그림을 그리라고 명령을 내리면 '융합 화풍'의 작품도 그려낸다.

인공지능도 예술을 할 수 있다

인간의 창작 능력은 모방, 변형, 융합, 창조의 4단계로 볼 수 있다. 이 창작 단계를 인공지능이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 수많은 재료를 학습한 인공지능은 새로운 융합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이 융합 학습 과정을 무한대로 진행해 가면 최초 모방과 융합의 소재가 됐던 작품과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고흐와 피카소를 섞어 그림을 그리라는 명령이 아니라, 컴퓨터 난수(Random Number)를 입력했을 때 인공지능만의 독특한 알고리즘을 통해 자신만의 창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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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김정호 교수 연구팀이 학습을 시킨 인공지능이 고흐 화풍으로 그린 그림들. 왼쪽은 대전 KAIST 본교 학술문화관(도서관)이고, 오른쪽은 철쭉이 활짝 핀 한라산 그림이다.
미술작품만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음악도 작곡하고 문학 작품도 쓸 수 있다.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장르인 음악과 미술, 그리고 문학을 융합할 수 있다. 차이콥스키를 들으며 풍경화를 그릴 수도 있고, 르누아르를 학습하면서 영감을 얻어 서정시를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한대의 학습과 반복은 컴퓨터의 강점이다. 컴퓨터는 전기만 공급해 주면 쉬지 않고 계속 학습하고 재창작을 한다. 학습용 데이터 크기와 컴퓨터의 능력만이 그 한계의 선을 그을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미적 능력은 인간의 학습 결과물로 볼 수도 있다. 인류가 생존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학습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태어난 이후 수많은 경험의 학습 결과일 수도 있다. 이를 그대로 인공지능 학습 과정에 도입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기준인 대칭, 균형, 비율, 색상의 조화도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예술품을 창작 못 할 이유도 없다. 연장선상에서 인공지능이 자기 작품과 타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가 능력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은 예술(藝術)의 창작(創作) 능력을 갖게 된다. 인간의 창의성도 무의식 속에 쌓인 빅데이터에 의한 학습 결과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창작품의 소유와 권리

2019년 11월 미국 법원은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술에 관한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저작권이 있는 데이터로 학습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권한은 합법적이다'라는 내용이다. 인공지능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는 특정인에게 지식재산권이 인정되지만, 인공지능이 이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 또한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예술 작품 창작에 적용하면 '학습을 통한 창작품 또는 예술품의 생산도 합법적'이라는 뜻이 된다. 즉, 기존의 인간이 창작한 예술작품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작품을 만들었을 경우, 기존 예술인이 이 인공지능 작품에 대해 지식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의 이용 권리(權利), 그를 토대로 개발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권리, 그 알고리즘을 이용한 창작품의 권리와 미래에 인공지능의 인격권(人格權)을 인정해 주는 법률적 토대가 될 전망이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기하급수적이다. 그 결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인간이라는 주체를 배제한 상태에서도 예술 작품의 생산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인간성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창작과 예술의 주체(主體)라는 존재감이 심각하게 도전을 받는 시점이 온 것이다. 다행히 아직 인공지능의 능력이 아카데미 영화 각본상과 작품상을 받은 인간 봉준호 감독의 수준을 따라가기는 한참 멀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전망이다.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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