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코로나가 웃는다

조선일보
입력 2020.02.15 03:00

[아무튼, 주말]
신종 코로나의 경제학

외국 여성이 싱크대에 코로나 맥주를 버리는 모습. 이 패러디물은 코로나 맥주를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가정하고,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튜브 캡처
외국 여성이 싱크대에 코로나 맥주를 버리는 모습. 이 패러디물은 코로나 맥주를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가정하고,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일부러 코로나(맥주) 병을 잡았어요."

지난 11일 저녁, 서울 무교동 인근의 한 세계맥주전문점을 찾은 직장인 김모(40)씨는 냉장고 가장 아래 칸에 있는 코로나맥주를 들었다. 김씨는 "1년 이상 코로나맥주를 마신 적이 없지만, 최근 '코로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다 보니 오히려 호기심이 생겨서 마시게 됐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각종 경제활동에도 예상 밖 영향을 미친다. 주홍(朱紅) 글씨가 새겨진 업종도 있지만,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 가는 영역도 생겨난다. 대표적으로 코로나맥주가 있다. 1925년 멕시코 주류 회사가 스페인어로 '왕관'을 뜻하는 'corona'라는 이름을 붙여 시작한 브랜드. 2013년에는 다국적 주류업체 'AB 인베브'로 넘어갔다.

지난달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본격 유행하자, 코로나맥주는 대표적 희생양으로 보였다. 인터넷에서는 '코로나맥주 바이러스(Coron abeerVirus)' '맥주 바이러스(beer virus)'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구글 등에서는 이런 말 검색 건수가 1000% 증가하기도 했다.

패러디물도 등장했다. 한 외국 여성은 멀쩡한 코로나맥주를 싱크대에 쏟아부으면서 "바이러스를 없앨 거야"라고 말하는 동영상을 제작했다. 코로나맥주 앞에 흰색 마스크를 씌운 독일산 하이네켄 병맥주를 놓은 사진도 주목받았다. 모두 코로나맥주를 코로나바이러스로 간주한 것이다.

물론 '코로나'라는 이름만 같을 뿐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적극 대응에 나설 법도 하지만, 코로나맥주 생산 업체와 수입 업체는 조용하다. 지금까지 미국의 코로나 맥주 판매회사 홍보 담당자가 한 언론에 나와 "고객들이 바이러스와 맥주 간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리라 믿는다"고 말한 게 전부다. 한국 수입 업체인 오비맥주도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조용한 로키(low-Key) 전략이 통했을까. 국내 주류 업계에서는 오히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코로나맥주가 인지도를 올린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코로나맥주는 한때 레몬을 타 먹는 맥주로 이름을 알렸지만, 지금은 인기가 상대적으로 한풀 꺾인 상황. 그러나 뜻하지 않게 '코로나'라는 이름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반사이익을 누리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대형 마트 A사가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코로나맥주(병) 매출을 집계한 결과 작년 2월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23.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알려지기 직전인 작년 12월 1일부터 10일까지는 매출액이 오히려 전년보다 26.8% 감소했다. 대형 마트 주류팀장 B씨는 "몇 년 사이에 수입 맥주 종류가 크게 늘어나면서, 코로나맥주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크게 빠진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입에 오르내리다 보니 조금씩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나일론 생산 업체도 기회를 잡았다. 마스크 제작 업체 사이에서 나일론으로 된 마스크 '끈'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며 생긴 일이다.

대구에 있는 마스크 끈 제조 업체 '한국세폭'은 마스크 끈을 생산하기 시작한 지난 2000년대 이후 가장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하루 10시간 남짓 돌리던 공장은 지난달부터 직원 14명을 2교대로 24시간 가동한다. 이 업체는 지름 약 3㎜인 나일론 끈을 약 1000~1200m 단위로 잘라 마스크 제작 업체에 공급한다. 원래 황사가 영향을 끼치는 10월부터 4월까지는 한 달 1500만m 정도를 생산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한 이후에는 2500만m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해도 유한킴벌리 등 30여 마스크 제조 업체가 요구하는 물량(3000만m)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국세폭 김성규 부장은 "솔직히 매출이 오르더라도 의료 목적으로 이용하는 제품이다 보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승승장구하던 '공유 경제(共有經濟)'는 역풍을 만났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물건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묻어 있지 않을까 하는 '찜찜'함이 작동한 것이다.

공유 숙박업의 상징이라는 에어비앤비는 사실상 신규 예약이 '제로(0)'수준. 서울 동대문에서 숙박업을 하는 김모(35)씨는 에어비앤비와 각종 호텔 사이트 등을 통해서 투숙객을 유치한다. 지난달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엄습하자 에어비앤비를 통한 예약은 모두 취소됐다. 1박에 60달러 하던 숙박비를 절반으로 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호텔 사이트를 통한 예약은 꾸준히 들어온다고 한다. 지난 11일에는 김씨가 운영하는 방 7개 가운데 3개가 찼는데, 모두 호텔 사이트를 통한 예약이었다. 김씨는 "에어비앤비가 '공유'의 상징이다 보니 관광객들이 찜찜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각종 물품 공유를 중개하는 일부 업체도 비슷한 처지다. 생활용품을 서로 빌려 쓰도록 연결하는 '은평공유센터'는 "사람이 만나고, 모이는 공유 센터 특성상 부득이하게 29일까지 폐쇄한다"고 공지했다. 대학생을 상대로 교재, 공학용 계산기 등을 빌릴 수 있도록 중개하는 '쉘리'의 최재웅 대표는 "아직 개학 전이라 움직임이 없지만, 매출 감소는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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