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보이스피싱범을 검사라 믿은 취준생

입력 2020.02.13 03:00

수백만원 뜯긴 20대, 극단 선택
공무집행방해 처벌 협박에 불안에 떨다 설 전날 비극 "4년간 희소병 친구 돕던 청년"

20대 취업 준비생이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전화 금융 사기)에 당해 수백만원을 잃은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대학 시절 희소병을 앓던 친구를 4년 내내 돕던 청년이었다. 아버지는 12일 '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 잡을 수 있을까요?'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전북 순창에서 취업을 준비했던 김모(28)씨는 지난달 20일 오전 9시 54분쯤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서울지방검찰청 김민수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금융사기단인 최민경 일당을 검거했는데 당신 계좌가 대규모 금융 사기에 연루돼 일단 돈을 찾아야 한다. 만일 이에 불응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고, 전국에 지명수배령이 내려진다"고 협박했다.

김씨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당황했지만 처벌받을 수 있다는 협박에 전화를 끊지 못했다. 상대는 검찰 출입증과 명함 사진까지 이메일로 보냈다. '김민수 검사'는 "조사를 받아야 하니 간단한 세면도구를 챙겨와라. 혐의점이 발견되면 구속된 상태에서 90일 동안 수사를 받아야 한다"며 돈을 찾아 서울로 오라고 했다. "중간에 전화를 끊으면 처벌을 받는다"며 다그쳤다. 김씨는 상대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김씨는 정읍의 한 은행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모아두었던 420만원을 찾아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이후 상대의 지시에 따라 마포구 한 주민센터 인근의 택배함에 돈을 넣어두었다. 그러는 사이 상대는 "주변에 제삼자 소리가 왜 계속 들려요?"라며 김씨를 윽박질렀다. 그런 뒤 김씨에게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카페로 가서 기다릴 것을 요구했다. 김씨가 카페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사이 김씨 돈은 택배함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김씨 아버지가 나중에 확인해 보니 김씨 휴대전화에는 이날 김씨와 보이스피싱범이 11시간 동안 통화한 녹음이 남아 있었다. 보이스피싱범을 "선생님" "검사님"이라고 부르며 불안에 떨면서 당황한 김씨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김씨는 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2일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옥상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보이스피싱범이 진짜 검사인 줄 알았다. 그의 유서에는 '통화 중 전화를 끊어 검사님의 연락을 못 받아 공무집행방해죄를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자신이 전화를 고의로 끊은 것이 아닌데, 검찰이 이를 오해해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한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김씨는 대학 시절 4년 내내 희소병을 앓던 친구의 휠체어를 밀며 함께 지낸 사실이 학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유족들은 "아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헛되지 않게 강력한 처벌과 재발 방지 수단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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