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일을 '언론자유의 날'로"...中 학계 저항운동 불붙인 34살 의사의 죽음

입력 2020.02.12 18:46 | 수정 2020.02.12 20:48

中 학계 인사 수백명, 전인대에 ‘언론 자유 보장’ 요구 청원
"리원량 사망일 2월 6일을 ‘언론자유의 날’로 지정" 요구도
中 정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일절 얘기 말라" 함구령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생을 처음 경고했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공안(중국 경찰)의 조사를 받았던 중국인 안과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죽음을 계기로 중국 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들끓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2일 보도했다.

 리원량 사망 다음날인 지난 7일 홍콩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 모인 홍콩시민들. /AP 연합뉴스
리원량 사망 다음날인 지난 7일 홍콩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 모인 홍콩시민들. /AP 연합뉴스
특히 그가 사망한 2월 6일을 '언론자유의 날'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리원량은 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렸다가 오히려 유언비어 유포자로 몰려 경찰의 처벌을 받았으며, 이후 환자 치료 도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최근 사망했다.

SCMP에 따르면 최근 중국 학계 인사 수백명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언론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했다. 우리나라의 국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전인대는 중국 헌법에 규정된 최고 권력기관이다.

청원서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것 △리원량의 사망일인 2월6일을 '언론 자유의 날'로 지정할 것 △누구도 연설·집회·편지·통신으로 처벌·위협·심문·검열·감금되지 않도록 할 것 △우한(武汉)과 후베이(湖北)성 주민에게 공정한 대우를 할 것 등 총 5가지 요구사항이 담겨 있다.

서명에 참여한 칭화대 사회학과의 궈위화(郭于華) 교수도 "탄압을 받더라도 우리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고 SCMP는 전했다. 그는 이어 중국 당국이 '정치 안정'을 내세우면서 리원량 등의 경고를 유언비어로 치부하고 억누른 것을 지적하며 "이러한 경고가 더 일찍 들릴 수 있었다면 사태가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장첸판(張千帆) 베이징대학 법학 교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공중보건 위기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며, 이러한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우고자 이번 서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 청원은 온라인에서 급속히 유포되고 있지만, 서명에 참여한 지식인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을 피해가진 못했다.

리원량을 추모하고 언론 자유를 주장하는 글들은 곧바로 당국에 의해 삭제됐으며, 수많은 위챗 계정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정지당했다. 의료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일절 얘기하지 말라는 '함구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중국 소셜미디어 더우반(豆瓣)은 봉쇄령이 내려진 신종코로나 발원지 우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암울한 상황을 '일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를 운영했으나, 이 코너도 이유 없이 폐쇄됐다.

궈위화 교수와 같은 학교 법대 쉬장룬(許章潤) 교수의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 계정은 최근 차단됐다. 쉬 교수는 최근 여러 해외 웹사이트에 '분노하는 인민은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신종코로나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표현의 자유 말살’로 돌린 바 있다.

'샤오수'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저명 언론인 천민은 "이번 서명 참여는 중국의 미래를 바꿀 중대한 시기에 양심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며 "(8만명이 넘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2008년 쓰촨 대지진보다 훨씬 중대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지식인으로서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일갈했다.

중국 지식인 사회가 이처럼 동요하는 가운데 리원량의 죽음이 시진핑 정권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이어져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같은 거대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친첸훙(秦前紅) 우한대학 법학 교수는 "이번 사태는 대단히 큰 위기"라며 "중국의 여론은 지금껏 분열됐지만, 이제는 (리원량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라는 동일한 감정과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최신 스마트폰, 전기차에 관심 많았던 평범한 가장
리원량은 임신한 아내, 아이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최신 스마트폰과 테슬라 전기차를 좋아했고 영국 프로축구팀 토트넘에서 뛰는 손흥민의 경기 장면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기도 했다.

 7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중신병원 주변에 마련된 중국 의사 리원량의 임시 추모소에 리씨의 사진과 꽃다발, 담배가 놓여 있다(오른쪽 사진). 우한시중신병원 의사인 리씨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생을 미리 경고했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지난달 감염자를 진료하다 자신도 우한 폐렴에 걸려 7일 결국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인터넷에서는 '시대의 영웅'이라는 등의 추모 글이 이어졌다. 왼쪽 사진은 리씨가 우한 폐렴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 /리원량 웨이보·EPA 연합뉴스
7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중신병원 주변에 마련된 중국 의사 리원량의 임시 추모소에 리씨의 사진과 꽃다발, 담배가 놓여 있다(오른쪽 사진). 우한시중신병원 의사인 리씨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생을 미리 경고했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지난달 감염자를 진료하다 자신도 우한 폐렴에 걸려 7일 결국 사망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인터넷에서는 "시대의 영웅"이라는 등의 추모 글이 이어졌다. 왼쪽 사진은 리씨가 우한 폐렴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 /리원량 웨이보·EPA 연합뉴스
그는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우한대 의대 동창 150여 명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 "(우한) 화난수산물 시장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진 환자가 7명 발생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한 환자의 자료에서 사스를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유사한 검사 결과를 봤다고 한다. 우한시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발생하고 있었지만 시 당국이 이를 공개하지 않을 때였다.

그에게 연락한 것은 보건 당국이 아니라 경찰이었다. 그는 1월 3일 밤 우한시 중난루(中南路) 파출소로 불려갔다. 경찰 2명은 사흘 전 그가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보여주며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사회질서에 엄중한 손실을 끼쳤다"고 했다. 경찰은 "반성하고 다시는 위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훈계서(訓戒書)를 내밀었고, 리씨는 거기에 서명한 후에 석방됐다. 그는 이후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압박감이 컸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그가 경고했던 바이러스가 중국과 전 세계 20여국으로 퍼졌다. 그도 바이러스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달 8일 82세 녹내장 환자를 진료하다 우한 폐렴에 걸렸다. 그는 이틀 뒤부터 발열 증세를 보여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 입원했고, 지난 1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는 입원 중에도 "회복되는 대로 (진료) 일선에 나가고 싶다"며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는데 탈주병이 될 수 없다"고 했지만 확진 판정을 받은 지 5일 만인 2월 6일 결국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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