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베토벤 탄생 250주년, 두 유대인 巨匠으로 베를린이 불타올랐다

조선일보
  • 베를린=장일범 음악평론가
입력 2020.01.15 03:00

베를린 필하모닉 올해 첫 콘서트
페트렌코와 바렌보임 협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는 올해 첫 콘서트는 강렬했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 지휘자이자 '베를린의 터줏대감'인 다니엘 바렌보임(78)의 피아노와, 러시아 출신으로 세계 최고(最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 왕좌에 오른 키릴 페트렌코(48)의 지휘. 그야말로 베를린 음악계를 대표하는 유대계 신·구 거장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려주는 자리였다.

지난 11일 상임지휘자 키릴 페트렌코(왼쪽)와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한 뒤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지난 11일 상임지휘자 키릴 페트렌코(왼쪽)와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한 뒤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렌보임은 베토벤 해석의 달인이다. 이미 오래전 베토벤 협주곡 전곡을 지휘하면서 베를린 필과 협연하는 영상을 만들었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과 교향곡 전곡도 연주했다. 지난 11일(현지 시각) 공연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의 영향을 짙게 받은 베토벤의 세계를 1악장에서 두껍게 그린 바렌보임은 카덴차에서 청중을 숨막히게 하더니, 느린 2악장에서는 심오한 연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3악장은 다양한 색채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하이라이트. 약음과 강음의 극명한 대비를 들려주며 프레이즈마다 다른 분위기로 빛나는 광채를 뿜어냈으며 폭발적인 피날레를 선사했다. 후배 지휘자인 페트렌코와 찰떡 호흡을 보여준 바렌보임은 청중의 뜨거운 박수에 슈베르트의 즉흥곡 2번을 앙코르로 했다. 이 곡이 전편에 흘렀던 영화 '4분간'의 장면들이 맴돌았다. 천상의 서정을 맛보게 했다.

2부는 좀처럼 듣기 힘든 체코 작곡가 요세프 수크의 교향곡 2번 '아스라엘'이었다. '죽음의 천사'란 뜻이다. 60분에 이르는 대곡으로 말러 교향곡을 연상케 하는 파괴력을 갖췄다. 페트렌코가 베를린 코미셰 오퍼에 있을 때 음반을 녹음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은 작품이다. 1904년 장인인 드보르자크가 세상을 떠나자 이 곡을 쓰기 시작한 수크는 드보르자크 작품 속 소재와 체코 민속음악 느낌도 담아 드보르자크의 음악 인생을 축복했다. 3악장까지 완성한 시점에 아내 오틸리에가 아버지 드보르자크의 죽음을 비관해 세상을 떠나자 4·5악장은 오로지 아내를 애도하기 위해 만든 장대한 비극이다.

베를린 필은 1악장부터 불타오르는 화력을 뽐냈다. 이 압도적인 화력은 베를린 필에서만 느껴지는 강인함이다. 두 명의 악장 다니엘 스타브라바와 노아 벤딕스발글리가 함께 현을 이끌었다. 스타브라바의 솔로는 오틸리에의 가녀린 목소리임을 직감케 했다. 페트렌코의 열정적 지휘에 불을 뿜던 베를린 필은 피날레에서 잦아들면서 오틸리에와 드보르자크가 천국에 들어갔음을 선언했다. 페트렌코와 베를린 필의 2020년 첫 공연은 장엄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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