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끼어들지 말라"는 北 바지춤에 언제까지 매달릴 건가

조선일보
입력 2020.01.13 03:19

북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를 친서로 직접 받았다'면서 우리 정부를 향해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청와대 안보실장이 '트럼프가 부탁한 김정은 생일 축하 메시지를 북측에 전달했다'고 발표하자 바로 반박한 것이다. 김계관은 "남조선이 흥분에 겨워 온몸을 떨며 긴급통지문으로 알린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미·북 연락 통로는 따로 있다"며 "남조선은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 신세가 되지 않으려거든 자중하라"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메시지'로 미·북 간 중재자 역할을 되찾은 것처럼 선전하려다가 북으로부터 모욕과 조롱만 당한 것이다.

이런 일이 벌써 몇 번째인지 헤아리기도 힘들다. 김정은은 작년 말 전원회의 결과 보고에서 대남 정책을 비롯해 한국에 대한 언급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김정은 답방과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북은 "아전인수격의 자화자찬과 과대망상" "역겹기 그지없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이 "남북 경협으로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겠다"고 한 다음 날 북은 "맞을 짓 하지 말라"며 미사일을 쐈다. 문 대통령이 "남북 대화가 다양한 경로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 직후에는 북 외무성 국장이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고, 우리 정부가 북한에 쌀 5만t을 보내기로 했을 때는 북이 "시시껄렁한 물물 거래, 생색 내기"라고 퇴짜를 놓았다. 미·북 사이에 끼어들지 말라고 걷어차는 북의 바지춤을 계속 붙잡고 늘어지는 우리 정부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도 부끄럽고 참담해진다.

김계관은 이날 "대화가 다시 이뤄지려면 미국이 북한의 요구 사항들을 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며 "일부 제재와 핵시설을 바꾸자는 베트남에서와 같은 협상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유지되고 있지만 더 이상 속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국제사회는 모두 김정은의 '비핵화 사기'에 또 속았다는 심정인데 북은 자신들이 기만당했다는 식으로 큰소리를 친다. 대한민국은 미국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확실하다고 허위 보증을 선 죄로 신용을 잃고, 북엔 미국과 다리 놔준 것 이상으로 쓸모가 없다며 천덕꾸러기 취급만 받는다. 국민도 이런 사정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대북 정책에서 무슨 성과가 있었던 것처럼 포장해서 표를 얻어 보려는 속임수도 이제 접을 때가 됐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