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北 모두 아니라는데 정권만 몸 단 '南北 속도전'

조선일보
입력 2020.01.08 03:20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북이 노력하자"고 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노력" "남북 철도·도로 연결"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도 언급했다. "우리 정부 들어 평화가 성큼 다가왔다"는 말까지 했다. 대통령 신년사만 들으면 한반도에 드리웠던 북핵 먹구름이 걷히고 남북 평화 시대가 활짝 열린 듯하다.

현실이 그런가. 지난해 북한은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탄도미사일 시험만 13차례 했다. 김정은은 폐쇄를 약속한 '미사일 실험장'에서 신형 엔진에 불을 붙이더니 '충격적 행동' 운운하며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북핵 문제는 먹구름 정도가 아니라 언제 천둥과 벼락이 칠지 모를 험악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신년사는 '북핵'과 '비핵화'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북·미 대화의 교착 속에서 남북 관계의 후퇴까지 염려되는 지금 북·미 대화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과 함께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했다. 남북 관계를 미·북 핵협상 진전에 연계해 왔던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미국이 이미 반대 뜻을 분명히 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도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안보 특보가 6일 워싱턴에서 "문재인 정부는 중·러의 대북 제재 완화 제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을 만나 제재 완화 시도에 사실상 동조했다. 대통령은 북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지렛대인 제재를 풀어주는 데 앞장서려는 것인가.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의 핵심 연결 고리인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 선언을 했다가 미국의 강한 압박에 뒷걸음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비핵화 압박 국제 공조에서 벗어나 북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쪽에 섰다가 뒷감당을 할 자신은 있나.

금강산·개성·철도 정도의 협력 제안에 북이 맞장구를 칠지도 의문이다. 북 선전 도구는 그제도 문 대통령의 평화 구상을 "가소로운 넋두리" 라고 비난했다. 김정은은 새해 벽두 노동당 전원회의 보도에서 '남한'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아예 무시한 것이다.

총선을 석 달 앞두고 어떻게든 '김정은 쇼'로 표를 얻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통령이 미국이 결사 반대하고, 북한도 전혀 생각이 없다는 '남북 속도전'이라는 허황된 시나리오로 국민 눈을 흐리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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