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혼자 사회 가속화... 좋아하는 일 해야 살아남는다" 송길영

입력 2020.01.04 06:00 | 수정 2020.01.07 08:06

"선한 사람 기회 더 많이 가져" 데이터가 속속 증명
스펙과 공채 사라져… 좋아하는 일 해야 직업 유지
데이터 투명 사회... 키워드는 공정성, 유연성, 독립성
권력도 1/n... 상하 없는 ‘어벤져스’팀, 크루들의 결합
어제 오늘 비슷해 보여도, 5년 10년 단위로 큰 변화

다음소프트 부사장 송길영. 대중 언어가 탁월한 국내 최고의 빅데이터 해석가./사진=이태경 기자
다음소프트 부사장 송길영. 대중 언어가 탁월한 국내 최고의 빅데이터 해석가./사진=이태경 기자
2020년이 다가왔다.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올해의 주요 키워드로 도움을 얻기 위해 데이터분석 기업 다음소프트의 송길영 부사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송길영은 방대한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국내 최고의 빅데이터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전산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그가 해석하는 ‘데이터 신호'는 기계적인 소비자 수치가 아니라 심리학, 윤리학, 인류학의 시그널로 읽힌다.

지난 20년간 소셜미디어에 쌓인 수많은 욕망을 분석하면서, 송길영은 자신을 사회적 마음을 캐는 광부라고 정의했다. 대중의 마음을 읽으면 ‘원하는 것을 주고 원하지 않는 것을 안 줄 수 있다'. 데이터는 확실히 시장의 에러를 줄여주지만, 한편으론 그 변화 속도가 빨라 오늘의 상식이 내일의 오류가 되는 걸 보면 무상하기도 하다.

10년간 융성했던 스펙 관련 키워드가 희미해지는 걸 보며, 그는 공채가 사라지고 제너럴리스트는 그 효용을 다했다고 진단했다. 앞으로는 좋아하는 일을 깊게 수련한 스페셜리스트가 살아남고 ‘혼자 사회’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데이터 노출로 선행과 악행의 결과는 빛 가운데 더 빨리 더 투명하게 드러나니, 이젠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옛말이다. "착하게 살면 기회가 더 많이 온다"는 당위조차 데이터로 증명되는 공정 사회다.

인터뷰를 통해 올해에 도포된 얇은 트렌드를 취하려 했으나, ‘일어날 일은 일어나니' 눈을 들어 멀리 10년 후를 보고 계획을 세우라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남동 다음소프트 사옥에서 송길영을 만났다. 지하카페테리아는 커피와 맥주가 종류별로 다양했고, 외부로 통하는 문은 히든 도어로 신비감을 더했다. 아카데믹한 공기를 비집고 신해철을 닮은 명랑한 사내가 들어섰다. 하나로 묶은 긴 머리, 리드미컬한 말투, 여러 층위가 섞여 쏟아져 나오는 텍스트의 경사가 가팔라 디지털 곡괭이를 든 광부라기보다 빅데이터 계의 록스타나 래퍼처럼 보였다.

-무엇을 보고 있나요?

"인스타그램 이미지요. 텀블러 하나도 신(Scene)마다 다 달라요. 컬러풀한 킨토는 네일아트를 강조하고, 스테인리스는 아웃도어, 블루버틀은 내 차가 미니쿠퍼라는 걸 자랑할 때 나와요. 이미지만 봐도 어떻게 팔아야 할 지가 보이죠. 호텔도 바깥 풍경 사진은 포도호텔이나 제주 신라가, 객실과 인피니티풀은 아난티 호텔이 잡혀요. 떠오르는 이미지가 곧 브랜드예요."

-송길영이라는 사람은 어떤 이미지로 읽히나요?

"자주 등장하는 그림은 강연, 키워드는 빅데이터, 슬로건은 마이닝 마인즈, 강력한 이미지는 긴 머리. 한마디로 전공이 IT인 머리 길고 이상한 사람이에요(웃음)."

송길영은 소비자가 어디를 가고 뭘 먹고 어떻게 노는지 소셜미디어로 욕망을 통찰한 책 ‘상상하지 말라'을 펴내기도 했다./사진=이태경 기자
송길영은 소비자가 어디를 가고 뭘 먹고 어떻게 노는지 소셜미디어로 욕망을 통찰한 책 ‘상상하지 말라'을 펴내기도 했다./사진=이태경 기자
-왜 스스로를 마인즈 마이너(Minds Miner)라고 부르지요?

"데이터는 마음의 편지예요. 저는 소셜미디어라는 광산에서 마음의 편지를 캐서 읽어요. 한 사람의 마음이 아니고 복수로서의 ‘소셜 마인즈’를. ‘마이닝 마인즈(Mining minds)'라는 슬로건을 찾아내는 데 6년이 걸렸어요. 그동안 고민한 거예요.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나? 빅데이터를 들여다본 건 트렌드 예측이 아닌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어요. 목표는 인간 이해고 데이터는 그 도구였던 거죠."

-데이터의 징후는 어떤 방식으로 파악합니까?

"가령 2012년부터 ‘술 마시다’ 보다 ‘커피 마시다’라는 키워드가 더 많이 잡혔어요. 머지않아 갈증 해소 음료로 아메리카노가 뜨겠구나 싶었죠. 그때만 해도 아메리카노는 잘 안마셨어요. 그런데 2017년부터 커피 행동을 분석했더니 아메리카노에 대한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요. 예측이 사실로 온 거죠."

-최근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열풍도 갈증 해소의 연장선이었군요. 이런 소비 패턴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신호로 잡혔다는 거죠?

"제가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바꿔말하면 올 것을 미리 알면 대비할 수 있다는 거죠. 데이터는 계속 시그널을 보내고 있어요. 임계가 넘어가면 그 변화가 급격해집니다.

가령 TV의 힘이 떨어지면서 매스미디어의 양태가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TV채널 파워는 떨어졌지만, 취향과 깊이는 다변화됐죠. 유튜브나 페이스북 사용자는 스스로 매스미디어의 생산자로 시장에 진입했어요. 수요자 위치에 머물지 않고 생산자로 사고해야 기회가 보여요."

-최근엔 ‘펭수’나 ‘유산슬’만 봐도 공중파와 유튜브가 연합하고, 방송사 간의 경계도 희미해졌더군요. 그 변화의 진폭이 놀라우면서도 또 한편 자연스러웠어요.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니까요. 매일 똑같아 보여도 아이들은 어느새 키가 커서 훌쩍이잖아요. 회식에서 술 파도를 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런 풍경이 보기 힘들어요. 아빠는 일찍 집에 가서 설거지를 하고, 사무실은 코워커 스페이스로 바뀌었죠. 사람들은 한 달 살러 제주도로 가요. 어제와 오늘이 비슷해 보이는데 5년, 10년 단위로 보면 확 바뀌어 있어요."

-당장은 변화가 빠른 듯도 느린 듯도 하여 혼란을 겪습니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전통 산업은 유지가 되고 있으니, 당장 올해 계획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럴 땐 목표의 거리를 늘려야 해요. 내년이 아니라 10년 후를 생각해야죠. 매일 데이터를 보면서 깨달았어요. 시야를 멀리 가져가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구나."

“스펙 쌓기는 이제 필요없어요. 오래 일을 파고들려면 그 일을 좋아해야 해요.”/사진=이태경 기자
“스펙 쌓기는 이제 필요없어요. 오래 일을 파고들려면 그 일을 좋아해야 해요.”/사진=이태경 기자
-요즘 잡히는 큰 그림은 뭐죠?

"스펙에 대한 회의에요. 지난 10년간은 스펙이라는 키워드가 엄청나게 늘었었죠. 봉사, 공모, 해외 경험 등으로 청년들이 어마어마한 경쟁을 했어요. 대학 받고 대학원 더, 이런 식이었죠. 오죽하면 ‘퇴사학교'의 장수한 대표가 쓴소리를 했습니다. "쓰지도 않을 자원을 계속 축척하고 있다"고. 40만 공시족에게 스펙은 대기권 탈출할 때까지만 쓰는 로켓, 입사 후엔 무용지물이라는 거죠."

-앨빈 토플러도 지적했죠.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요.

"그런데도 여전히 토익갱신병 같은 게 있었어요. 이직을 위해 다시 토익 시험을 치고 점수를 따는 거죠. 심지어 위험물취급사 같은 자격증도 따요. 혹 나중에 도움이 될까 봐."

-불안 때문이겠지요.

"목표가 없어서예요. 방향을 모르니 그냥 "뭐라도 하는 상태"를 반복하는 거죠. 그런데 스펙이 필요했던 공채 시험 자체가 이젠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공사나 금융권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제너럴리스트는 더 이상 불필요한 시대가 온 거죠. 실제로 평균적인 일은 AI가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로 다 하고 있어요. 몇 년 전부터 데이터가 예고한 풍경이 현실이 되는 걸 보면 놀라워요."

-송 박사의 강연을 들어보면 기업에는 "상대가 원하는 걸 하라. 그러기 위해선 데이터를 관찰하라"고 코칭하고, 개인에게는 "네가 원하는 걸 해라. 그러기 위해선 너를 탐색하라"고 합니다. 그 두 가지가 어떻게 충돌 없이 연결이 되나요?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사이의 거리는 모든 사회적 비즈니스의 관심사인데요.

"일단 조직은 고객의 마음을 얻어야 물건을 팔 수 있으니, 당연히 상대를 연구해야죠. 개인은 직업에 대한 조언이에요. 전 무조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라고 해요. 기존 직업 중 평균적인 일은 다 AI로 대체되고, 이젠 깊게 공부하고 수련하는 사람만이 직업 세계에서 살아남아요. 덕후들의 시대죠. 그런데 오래 그 일을 파고들려면 그 일을 좋아해야 해요. 싫어하는 일은 절대 길게 잘할 수 없잖아요(웃음).

뿐인가요. 내가 잘해도 새로운 일을 이 사회에 안착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3년은 해야 진정성이 확보되고, 그 과정에서도 내가 하는 일을 꾸준히 사방에 알려야죠. 제가 강연을 많이 한 것도 필요해서였어요. 그런 과정에 신용이 생기고 기회가 늘어나죠. 우연히 벌어지는 일, 스킵해도 될 일은 없어요. 차근차근 다 계단을 밟게 돼 있어요."

-그 와중에 방시혁과 봉준호는 전 세계적인 메가 히트상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방시혁은 보편적 메시지의 좋은 콘텐츠로 취향 공동체의 열광을 끌어낸 게 성공 포인트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보세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 고민을 많이 했나? 일단 그들은 이 질문에 충실한 사람들이에요. BTS는 유저들에게 숨은 메타포, 즉 이스터에그를 많이 심어둬요. 보통 팬들이 봐도 예쁜 보이그룹인데, 열성 팬들이 보면 더 깊게 보이죠. 고민의 총량이 완성도를 높인 거예요. 원히트 원더는 운이에요. 계속하려면 체력이 요구돼요. 그 힘듦을 버틴 건 그 일을 정말 좋아해서죠."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BTS의 성공에 대해 기조 연설하는 방시혁.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BTS의 성공에 대해 기조 연설하는 방시혁.
-보편적 메시지는요? BTS의 ‘러브 유어셀프'나 ‘기생충'의 불평등 이슈가 전 세계 트렌드와 맞닿았다고 보는데요.

"두 결과물은 공정성과 투명성, 개인이라는 시대정신이 녹아 있어요. 문화상품은 그걸로 전 세계를 연결하니까요. 트렌드와는 범주가 좀 다릅니다. 트렌드는 지금도 수천만 개가 있어요. 지금 뜨는 소셜살롱만 봐도 외롭다, 어울리고 싶다, 공부하고 싶다 등 굉장히 다양한 층위가 결합해 있어요. 그래서 트렌드는 발견보다는 메타화 추상화의 영역이에요. 방시혁과 봉준호는 그보다 공감의 코드가 넓고 그들을 지지한 코어 집단이 많았던 거고요."

-주로 어떤 데이터를 봅니까?

"이미지와 동영상, SNS 뉴스피드와 커뮤니티 댓글까지 전부 보고 있어요. 20년 데이터가 쌓이니 페타급을 넘어섰습니다."

-산처럼 쌓인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지요?

"패턴을 봅니다. 언어 분석, 심리 분석으로 데이터를 남긴 사람의 의도를 파악해요. 가령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대사가 식사 행위가 아니라 연민의 표현이잖아요.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의 의도를 알아차리려면 인지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종교, 철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저는 컴퓨터 전문가라 화자의 말을 해석할 수 없어,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 데이터 언어는 곧 인간의 이해더군요. 그분들을 지금 다음소프트 직원으로 초빙해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웃음)."

-사실 송 박사에게 인터뷰를 청한 건 독자들에게 2020년의 트렌드를 알려주기 위해서였어요(웃음).

"하하. 저는 트렌드 족집게 과외는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좀 더 넓게 지금 사회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길 즐기지요. 우리의 인식이 12월에서 1월로 달력이 바뀐다고 변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가, 거시적으로 봐야죠."

-데이터가 말하는 인간은 어떤 모양입니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존재죠. 원형의 욕망, 인정 욕구, 소셜 밸류에 대한 갈망이 합쳐져서 살아가는 집단이에요."

-최근 나는 두 명의 데이터 전문가를 인터뷰했습니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의 저자인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그리고 ‘팩트풀니스'의 저자인 안나 로슬링입니다. 구글 출신의 데이터 과학자들답게 그들은 항상 추측하지 말고 ‘데이터를 보라'고 하더군요. 세스는 인간이 검색창에 쏟아놓는 어두운 욕망에, 안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낙관에 몰두했습니다. 두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뽑아낸 메시지는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우리 모두 공평하게 엉망진창, 그것이 또한 위로될 것" 또 하나는 "가난, 혐오뉴스에 속지 마라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다"였어요. 데이터로 보여주고 싶은 당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인간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일단 크게 보면 인류는 나아지고 있죠. 하지만 그게 당장의 개개의 한 인간에게 도움이 되나? 그건 모르겠어요. AI로 인해 육체노동이 창조적 지식 노동으로 전환되는 건 발전이지만, 당장 현장 노동자들에겐 버거운 변화죠. 그 과정에 실업과 구직 등으로 수많은 희로애락이 생겨요.

데이터에서 내가 본 인생은 밝고도 어두워요. 나에 대한 인지, 내 눈높이가 어느 레벨에 있는지에 따라 반응은 다 달라요. 그래서 내 슬로건이 마이닝 마인즈( Mining Minds)예요. 마인즈는 복수, 개개 인간의 마음의 합이죠. 저는 최선을 다해 그 마음의 합, 현재의 상식을 캐내려고 하는 거고요."

상상하지 말고 먼저 데이터를 관찰해야 한다.
상상하지 말고 먼저 데이터를 관찰해야 한다.
-세스 다비도위츠는 ‘어두운 디지털 고해소’인 검색창과 ‘지나치게 밝은 쇼윈도’인 페이스북을 동시에 들여다봐야 균형 잡힌 삶이 보인다더군요.

"인스타그램은 더해요. ‘해피 해피 해피’죠. 다른 사람의 포스팅을 보면 우울감까지 들죠. 저는 데이터의 메시지를 창구에 따라 더 세분화해서 읽어요. 구글이나 페이스북뿐 아니에요. 지역 카페, 무기명 블라인드, 쇼핑몰 댓글, 인스타그램… 목적에 따라 데이터 소스를 한정해서 가공합니다. 말했듯이 사람들은 공간마다 다른 의도로 흔적을 남기니까요.

샘플링으로 추정하는 통계와는 달리, 데이터는 모집단 전체를 볼 수 있어요. 놀라운 분류 기술로 그게 가능해졌죠. 심지어 하루에 500만 건의 트위터도 가져와서 분석해요. 검색과 연관성, 누가 리트윗했는지까지."

-인간의 말과 행동의 축적물을 보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무엇이지요?

"무턱대고 상상하면 안 된다는 거죠. 상상하기 전에 관찰해야 해요. 관찰하면 이해하고 이해하면 배려하게 돼요.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이상한 상품을 만들고 이상한 조언과 배려를 하죠.

일례로 아들 생일 선물을 사려 해도, 관찰해야 뭐가 필요한 줄 알아요. 관찰하지 않으면 엉뚱한 배려로 상처만 주죠.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명절에 며느리에게 앞치마를 선물했던 것처럼요. 그걸 선한 엇갈림이라고 해요. 실수를 줄이려면 사람에 대한, 시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해요."

-데이터가 정말 삶의 에러를 줄여줄 수 있나요?

"최소한 시장의 에러를 줄여줄 수는 있어요. 소비자가 원하는 걸 만들면 팔리고, 어림짐작으로 대충 만들면 안 팔려요. 그걸 데이터가 확인시켜주죠. 가령 싱글이 늘어난다고 그들을 상대로 작은 세탁기를 내놓으면 안 팔립니다. 작은 세탁기는 이미 빌트인 되어 있고, 싱글들은 예상과는 달리 한꺼번에 대용량 빨래를 하거든요. 반면 냉장고는 작아져요. 저장 기능이 아니라 인테리어, 인스타 전시용으로 작고 컬러풀한 걸 사죠.

데이터를 알면 제품 개발의 무기가 늘어나요. 기업이 엄마들과 커뮤니케이션할 때도 ‘행복한 엄마'나 모성애'를 강조하면 시대를 잘못 읽은 거예요. ‘힘들지? 함께 해줄게'로 접근하고 슬로건을 만들 때 비즈니스 기회가 생겨요. 노인은 또 달라요. ‘힘드니까 도와드려야지'로 접근하면 싫어하세요. ‘실버세대를 위한'이라는 슬로건은 안 먹힙니다.

데이터에 따르면 노인의 의식은 "나는 안 늙었어. 친구만 늙었지'예요. 70세 전까지는 스스로 중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나이 드신 분들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욕망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요실금 팬티를 팔려면 기능보다 ‘티 안나게' 컨셉으로 해야 해요. 데이터는 물건보다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환경을 읽어낼 수 있도록 도와줘요. 감사한 일이죠."

1인 가구의 주방을 차지하는 스메그 냉장고. 기능보다는 디자인이 예뻐서 싱글들의 사진 촬영용 가전으로 인기다.
1인 가구의 주방을 차지하는 스메그 냉장고. 기능보다는 디자인이 예뻐서 싱글들의 사진 촬영용 가전으로 인기다.
-소비 예측뿐 아니라 엄마와 노인들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걸 보면 데이터가 굉장히 인간적인 도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맞아요. 데이터는 당위가 아닌 실리로 증명해요. 가령 ‘착하게 살아야 기회가 늘어난다’고 하는데 이거 정말 맞나? 이미 데이터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요즘 여기저기서 ‘모녀여행'이 떠요. 여행 파트너는 나이스하고 상호작용이 잘 돼야 하는데, 그 대상이 ‘엄마'로 모인 거예요. "맛있다, 좋다, 고맙다" 감탄하고 상대의 기분을 잘 맞춰주거든요. 아빠들은 불평도 많고 호응도 적어서 기운만 빠진대요(웃음).

관계는 상호작용이에요.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면 기회가 생겨요. 이런 발견은 제품으로도 연결돼요.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눈동자가 커지는데, 그걸 공략해서 서클렌즈를 팔죠.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이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어요."

-하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도 있지요.

"하하. 본인만 모르지 밖에서 보면 다 보여요. 메타인지가 안 될 뿐이죠. "이 차장이 어떤가?" 물으면 "뺀질대지." 답이 다 나와요. 본인한테만 얘기 안 해주는 거죠. 흔적은 사방에 있어서 ‘한 길 사람 속'을 다 알 수 있어요. 요즘은 흔적투성이라, 아이들 방과 후 동선까지 부모에게 실시간 보고되는 시대잖아요.

빅데이터가 인간 행동 과정을 예측할수록 공정성과 준법 문제가 대두돼요. 조직도 조직의 수장도 법을 지키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되거든요. ‘일벌백계’라고 나는 안 걸리겠지 하는데, 완전히 오산입니다. 지금은 다 걸려요. 변화의 방향은 이미 정해졌어요. ‘왜 룰을 안지키지?’에 걸리면 개인도 조직도 와르르 예요."

-결국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다 드러나서 필터링이 된다는 말이군요. 오래전에 JYP엔터테인먼트 사훈 중에 ‘준법정신'이 있는 걸 보고 의아했어요. 최근엔 YG가 사회적 물의를 빚고, JYP가 상승곡선을 타는 걸 보면서 ‘준법정신'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렇죠. 결과가 아닌 과정이 채록되고 있거든요. 준법이나 규칙의 감수성이 달라져서 과정에 불의가 있으면 대중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어요. 건축 현장에서도 헬멧에 카메라 달면 3D로 과정이 다 기록돼요. 어찌 보면 감리도 필요 없어지는 거죠. 열 길 사람 속을 다 비추는, 진정한 투명사회로 가고 있는 거예요."

-불투명했던 과정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면 또 뭐가 중요해지나요?

"제가 요즘 중요하게 보는 키워드는 세 가지예요. 공정성, 유연성, 독립성. 일단 공정성을 기준으로 조직과 개인의 규칙이 재정의돼야 해요. 이건 필수입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학습 경영 기반을 의심하고 유연성과 포용성을 발휘해야 해요. 의사결정에서 데이터가 들어갈수록 한 개인의 노하우는 덜 중요해지거든요. 그리고 점점 집단주의의 효용이 사라지면서 독립적 인간이 확산되고 있어요. 느슨한 연대는 늘지만, 인위적으로 끈끈함을 만들려는 노력은 안 먹히죠."

마블의 ‘어벤저스'. 조직과 팀이 이런 형태로 개편되고 있다. 사수, 팀장, 사장 없이 1/n 역할 개념으로 다른 ‘크루'와 뭉친다.
마블의 ‘어벤저스'. 조직과 팀이 이런 형태로 개편되고 있다. 사수, 팀장, 사장 없이 1/n 역할 개념으로 다른 ‘크루'와 뭉친다.
-매년 출간되는 트렌드 관련 도서 중에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와 다음 소프트의 ‘트렌드 노트’를 눈여겨보고 있어요. 올해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는 ‘업글인간, 멀티페르소나, 팬슈머, 페어플레이어’ 등을 키워드로 뽑았는데, 다음소프트에서는 ‘혼자 사회'가 타이틀이더군요.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아 모이고 흩어지는 사람들… ‘혼자’를 중심으로 취향공동체의 ‘인싸'를 영위하는 삶인데요. 트렌드는 정해져 있어도 그것을 해석하고 제안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관심 층위와 결이 달라서예요. 관찰, 해석, 변화 유추에서 접근 방법이 다르니 묶어내는 결과물도 달라요. 김난도 교수가 트렌드의 원조집이라면 저희는 트렌드가 트렌드가 된 이유에 대해서 파고들죠(웃음)."

-2015년부터 싱글, 1인 산업, 천원 샵 등을 이야기했는데 ‘혼자'도 계속 진화하고 있나요?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와 토론한 적이 있어요. 인간의 미래에서 탄생과 사멸은 변하지 않는 상수지만 여직껏 인구 변화는 변수였어요. 그런데 저출산으로 한 해 출생 인구가 30만 명 선으로 고정되면서, 이제 인구감소는 삶의 예측에서 상수가 됐어요. 1인 가구, 혼자, 외로움은 사회 변화를 해석하는 데 고정 키워드예요. 그래서 ‘정해진 미래'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혼자 사회가 됐다고 관계의 욕구가 적어졌냐 하면 아니에요. 완성된 개인으로 더 공정하고 깊게 관계 맺기를 바래요. 취향공동체로의 쏠림이 그렇고 조직에서의 역할 변화도 그래요. 마블의 ‘어벤져스'가 왜 통했겠어요? 이젠 사수, 팀장, 사장 이런 개념 없이 1/n 역할 개념으로 다른 ‘크루'와 뭉쳐요. 능력 있는 친구들이 상하 위계 없이 다른 형태로 기여하고, 부족하면 보완해서 더 나은 개인으로 나타나겠다는 거죠. 그래서 공채도 없어지고 프로페셔널들이 힘을 얻는 거예요."

-그런 ‘혼자 사회'로의 변화가 반가운 사람도 버거운 사람도 있겠습니다.

"사회변화는 중립적이에요.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충격이 생기죠. 준비하면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가만히 앉아 낡아가면 고립되는 거죠. 외로움이 싫으면 개인 네트워크를 만들고 열심히 준비해야죠. 나이 드신 분들은 계급장 떼고 사람 만나고, 관심과 결정의 지분도 1/n을 수용해야 해요."

-네트워크가 넓어지면서 변화의 속도도 더 빨라진다는 느낌입니다.

"그야말로 글로벌 빌리지에 사는 25억 명이 강하게 연결돼 있죠. 이젠 전 세계 청년들이 미혼은 비혼으로, 저출산은 비출산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런 미래 예측은 사실 앨빈 토플러가 다 했습니다. 우리가 옛날 지식에 갇혀서 무방비로 지냈을 뿐. 이젠 후배들에게 조언도 해주기 힘들어요. 지식과 가치 기준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니까요. 이럴 때일수록 더욱 육감에서 빠져나와 데이터를 봐야 합니다."

-데이터를 보면 우리가 굳게 믿었던 상식과 지식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수정되었다는 데 또 한번 놀랍니다. 컴퓨터 앞에서 이렇게 변하는 세상을 지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미소지으며)사실은 좀 무상합니다. 안 좋은 직업병이 있는데, 인생을 미리 본다는 거예요. 타인의 인생을 보면 허무하고 겸허해져요. 그렇게 흘러가겠구나, 예정된 미래에 우울감도 듭니다. 어쨌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게 삶이에요. 무상한 걸 알지만, 순간의 아름다움을, 행복을 즐겨야죠. 어차피 우리는 평생 불안과 권태 사이를 오가며 살아요. 그걸 인정하면서 변하는 세상, 변하는 감정을 관찰합니다."

”UN의 생애주기에 따르면 65세까지 청년이고 기대 수명은 120살에서 더 늘어날 전망이에요. 눈높이를 멀리 둬야 해요.”
”UN의 생애주기에 따르면 65세까지 청년이고 기대 수명은 120살에서 더 늘어날 전망이에요. 눈높이를 멀리 둬야 해요.”
-‘원하는 걸 주고 원하지 않는 걸 안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빅데이터를 21세기 원유라고도 했지요. 이 21세기 원유는 누가 어떻게 쓰는 것이 좋습니까?

"어떤 조직이든 전체 사회의 효율과 배려를 높이는 데 써야죠. 데이터로 에러를 줄이면 효율이 높아지고, 원하는 것을 찾아주면 삶의 질이 높아져요. 거대 기업 구글의 사훈이 ‘악해지지 말자' ‘옳은 일을 해라'인 건 이유가 있어요. 그게 장기적으로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죠.

타자의 욕망을 이해하고 환영받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건 나와 인류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우리 종의 숙명이에요. 선한 의지로 좋은 시스템을 제공해온 건, 집단생활을 거친 인류의 본능이죠. 그런 소셜 밸류가 우리 각자의 행복도 결정해요."

-마지막으로 2020년은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면 좋을 지 조언을 부탁합니다.

"인생이 1월 1일에 확 달라지지 않아요(웃음). 그리고 인생은 생각보다 깁니다. 앞으로 기대 수명은 120살에서 더 늘어날 전망이에요. 요는 눈높이를 멀리 둬야 해요. 올해도 예년처럼 금연, 다이어트 결심하지 말고, 10년 후의 목표를 세우세요. 멀리 보면 자산이 만들어져요.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거든요. 데이터는 고령화, AI, 하이퍼커넥트를 가리키고 있어요. 이걸 알면서 왜 아무것도 안 합니까?(웃음).

인류의 삶은 어쨌든 나아지고 있어요. 힘든 일이 줄어들면 책을 읽고 공부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해요. 개별적 삶이 특이하다 느껴도 데이터가 쌓아온 인간의 삶은 갑남을녀로 다 비슷해요. 그 방향은 확연히 공동체를 생각하는 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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