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재

어렸을 적,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은 문을 열어둔 채로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 사라질 거면 저 많은 별과 두꺼운 전화번호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꽃은 왜 피고 수퍼 앞 고양이는 왜 목을 긁는지, 그 모든 것들이 알고 싶었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키워주신 혜능 스님이 작년에 세상을 비우고 걸어가셨습니다. 갑작스럽게 사랑이 떠나면 가슴 한가운데에 번개처럼 금이 생기는데, 그 금 위로 사랑의 강물이 흐르게 된다는 걸 요즘에 와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이야기가 남습니다. 몸이 사랑이 됩니다. 또한 그 이야기와 사랑조차 시간에 녹아 다 사라진대도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눈부신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사랑하는 김문주 선생님, 사랑의 선생님! 선생님이 우리의 스승이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처음 이곳에서 선생님이 강의했던 날, 칠판에 쓰신 詩라는 글자가 제 이마를 뚫었어요. 창이 흔들렸죠. 속이 일렁거렸어요. 창밖은 봄이었는데, 선생님이 나긋나긋 시를 읽어주셨는데, 바로 그때 저는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이상한 확신에 휩싸였어요. 시를 이야기할 곳도, 배울 곳도 없던 이곳에서 저에게는 선생님 단 한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시였어요.

소중한 기회를 주신 문정희, 정호승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영남대의 스승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함께 시를 쓰며 걸어온 현정이, 송이, 유신아. 우리 계속 같이 걷자. 같이 산책하자. 동우, 현수, 혁준, 택, 대희형, 승빈, 지영, 상회, 수정, 주은 늘 고마워요. 끝으로 어머니, 아버지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하면서도, 밤이면 시를 읽어주신 두 사람. 저는 두 사람 덕분에 '사랑의 바깥'을 몰라요. 영재만 알지. 영재야, 이건 형이 처음 말하는 건데, 너는 형아가 쓴 시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사람이란다.

―1987년생
―영남대 국문학 박사 수료
―동 대학 시간강사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