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공산당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사람들

조선일보
  • 양상훈 주필
입력 2019.12.26 03:17

운동권에 中·北 공산당은 여전히 애틋한 그 무엇
美 전문가들 미·중 대결 시 韓은 100% 중국 편 판단
우리는 중국서 벗어난 뒤 사상 최고 번영기 맞았지만 20~30년 뒤에도 그럴까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홍콩과 위구르는 중국의 내정"이라고 말했다는 중국 측 발표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말한 건 시진핑 주석이고 문 대통령은 "잘 들었다"고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 정상 발언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을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중국에 항의도 정정 요청도 하지 않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때 일본과 발표 내용이 달랐다고 흥분해 펄펄 뛰던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이 정권은 미국·일본 등 전통 우방 앞에서는 당당하게 '철수하려면 하라' '사과하라' '양심이 있느냐' '무례하다'고 외치면서도 북한·중국의 공산당 앞에만 서면 다소곳해진다. 한국민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 세습 권력제, 우상화 독재, 고문과 공개 처형 등이다. 그걸 다 하고 있는 북한 노동당 앞에서 한국 민주 정부가 절절맨다. 북한의 첫 핵실험 직후 개성에서 북 노동당 인사들과 만난 한국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밥을 먹다 춤을 췄다. 우리를 겨냥한 미사일을 난사하고 '겁먹은 개'라고 해도 눈치를 본다. '김정은 이벤트'를 이어가려는 안간힘이겠지만 그 바탕엔 노동당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깔려 있다.

1948년까지 남로당(남한 노동당)은 한국에서 가장 막강한 정당이었다. 6·25 이후엔 미국의 지원을 받는 한국 독재 정부와의 투쟁이 운동권 이념을 반미 좌파로 만들었다. 1970~80년대 대학가에 리영희 책이 퍼지면서 반미·좌파가 운동권 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 결국 북한 노동당을 추종하는 주사파까지 등장했다. 당시 주사파에게 북한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은 '이상향'과도 같았다. 그 후 소련이 무너지고 공산권과 북한의 허구가 드러나 큰 좌절을 맛봤지만 이들에게 공산당은 여전히 애틋한 그 무엇이다. 문 대통령이 평양 연설에서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다"면서 "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고 했다. 여기에 노동당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에 대항하는 G2로 떠오른 중국 공산당은 한국 운동권에게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존재처럼 됐다. 2003년 방중(訪中)한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중국인으로 '마오쩌둥'을 꼽았다. 마오는 김일성과 함께 6·25 남침을 기획했고 대규모 파병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은 장본인이다. 중공군에게 죽고 능욕당한 우리 국민이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현재의 한반도 질곡도 그가 만든 것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이 마오를 제일 존경한다고 한다. 자식이 아버지 죽인 사람을 제일 존경한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동경, 흠모 없이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없다. 노 대통령과 후진타오가 함께 한 기자회견은 필자의 기억 속에 고양이와 쥐가 나란히 앉은 듯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2017년 방중한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면서 "한국도 작은 나라이지만 중국몽(夢)에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외국을 방문한 대통령이 그 나라를 추켜세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원수가 제 나라를 '작은 나라'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것은 상대를 우러러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중국 공산당 원조 찬양자이자 숭배자인 리영희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대통령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다면 이렇게 쉽게 3불(不)로 중국에 한국 군사주권을 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진핑이 한국 대통령 특사를 홍콩 행정장관 자리에 앉히는 것은 사드 보복이지만 한국을 보는 시각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미국 대통령에게 말한 사람이다. 한국 특사는 중국에 이 의전을 변경할 것을 정식 요청해야 했다. 그런데 대통령 특사가 지방 장관 자리에 앉아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절절맨다. 중국의 폭력적 대외정책을 겁낸 탓도 있겠지만 중국 공산당에 대한 '열등의식' '작은집 의식'이 바닥에 깔려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중 대결에서 일본은 100% 미국 편에 서고, 한국은 100% 중국 편에 선다고 보고 있다. 한·미가 결국엔 갈라설 것이란 예측이다. 중국 세력권에 있을 때 한국은 세계 최빈국을 면치 못했다. 모욕과 굴종의 역사였다. 중국에서 벗어나자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가 찾아왔다. 공산당 앞에만 서면 기를 못 펴는 사람들은 이번이든 다음이든 앞으로도 권력을 잡는다. 20~30년 후 한국이 어디에 있을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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