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 최종 합의안 공개에 법조계는 "충격적"
... 학계 "국민 공감·전문가 검토 없는 졸속 우려"
'고위공직자 범죄 인지 즉시 통보'는 독소조항?
"권력수사, 몽땅 공수처 손에...現 정권 수사하겠나"
'4+1' 협의체가 합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최종 수정안 내용이 알려지면서 법조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 안팎에서는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가 아니라 '고위공직자 범죄무마처'가 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24일 4+1 협의체는 패스트트랙에 올려져 있는 공수처 설치 법안을 합의하면서 윤소하 정의당 의원의 수정안을 최종안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밤 수정된 법안 내용이 일부 알려지자 야당을 비롯해 법조계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자유한국당은 "밀실에서 야합으로 무소불위의 슈퍼 권력을 만들었다"고 비판했고, 법조계에서는 "검찰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기구가 아니라 정권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정치기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수처 설치는 기존 사법소추시스템이 아예 바뀌는 일인데, 국민적 공감이나 전문가 집단의 토론과 검토도 없이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성급하게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복 수사가 반복되지 않겠느냐는 불안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확보한 윤 의원의 수정안을 보면, 가장 큰 논란을 부를 수 있는 것이 24조 2항이다. 검찰과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이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의 범죄 혐의를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한 것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수사의 독립성과 밀행성을 해치는 독소조항"이라며 "압수 수색 영장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범죄 인지 사실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법 조항 대로라면 모든 사건을 압수 수색 이전에 공수처에 보고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공수처는 구성 자체에서부터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부르고 있는데, 범죄 인지 단계에서부터 사전 보고를 하라는 것은 정권이 직접 수사대상 공직자들의 수사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아니라 되레 수사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검찰 개혁을 위해 ‘수사의 독립성’을 특히 강조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지난 2017년 5월 민정수석 취임 기자회견에서 "민정수석은 수사지휘를 해선 안 된다"면서 "검찰 개혁은 검찰을 엉망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검찰의 독립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했었다. 실제 현 정부들어 법무부는 검사들 보직을 외부인으로 채우면서 ‘탈검찰화’를 실현했고, 검찰로부터 수사와 관련한 정보는 일체 보고도 받지 않은 채 차단시켜 왔다. 지난 8월 조 전 장관 가족비리에 대한 검찰의 압수 수색이 대대적으로 이뤄졌을 때도 검찰이 법무부와 청와대 등에 사전 보고를 안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최근 울산시장 하명수사 사건을 보면 현 정권이 수사에 관여하거나 개입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결국 자신들에게 칼을 겨눈 검찰 수사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라는 반응도 많다.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는 "조국 사건을 비롯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등 현재 진행중인 사건은 모두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된다"면서 "저 법안대로라면 공수처가 경찰과 검찰의 사건을 가져가서 불기소 처분을 하고 끝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결국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확정된 공수처법은 수사 대상을 '체리피킹(cherry picking·좋은 것만 골라내는 행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들어놨다"면서 "친(親) 정권 성향이면 수사를 안 하고, 반(反) 정권 성향이면 수사를 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공수처장과 검사, 수사관 등에 대한 인사권을 사실상 대통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에 따르면, 공수처장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에서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도록 돼 있다.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여야 추천 각각 2명으로 구성된다.
검찰 견제 위해 만드는데 '공수처 견제장치'는 없어
검사·수사관 자격도 논란… 野 "민변 검찰 될거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임용 자격도 합의안에서는 대폭 완화됐다. 수사처 검사는 변호사 자격을 10년 이상 보유한 자로서 재판·수사 또는 수사처 규칙으로 정하는 조사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임명 대상이다. 수사처 수사관도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 가운데 7급 이상 공무원으로 수사·조사 업무에 종사했거나, 수사처 규칙으로 정하는 조사 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수사처 규칙으로 정하는 조사업무의 실무' 범위가 애매모호하다는 평가도 있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나 군 적폐청산위원회 등 각종 정치·사회적 기구에 참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 변호사가 공수처 검사·수사관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 특정 정치성향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공수처를 설치하면 '민변 검찰'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런 견제 장치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권은희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법안에는 ‘기소심의위원회’를 둬야 한다고 했었다. 공수처가 기소를 할 때는 외부전문가로 꾸려진 기소심의위원회에서 기소의 적절성을 판단한 뒤에 기소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에서는 이 조항 자체가 빠졌다. 무리한 검찰권 행사를 막기 위해서 만들겠다는 공수처인데, 이에 대한 견제기구는 없는 셈이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과 여영국 정의당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소조항' 논란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들은 "전국적인 인적·물적 조직망을 갖추지 않은 공수처가 고위공직자의 범죄 혐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며 "공수처장이 통보받은 범죄에 대해 수사개시 여부를 회신하도록 해 범죄 수사에 공백이나 혼선이 없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 검사의 자격 요건에 대해서도 "법조일원화 제도가 시행된 점을 고려했다"며 "원안처럼 (10년 이상의 수사 경력으로) 자격요건을 유지한다면 판사·검사들 중 역량 있는 인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고 했다.
야당 관계자는 "공수처법의 '독소조항'은 검·경 등 헌법기관들과 공수처 사이의 관계를 규정짓는 핵심"이라며 "패스트트랙 원안에 없던 것을 일부 정당끼리 끼워넣기한 것은 패스트트랙 제도를 어긴 것으로 불법 소지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