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北 양쪽서 '투명 인간' 취급받는 文 대통령

조선일보
입력 2019.12.11 03:18

미국이 북한의 도발 확대 조짐과 관련해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미국의 소집 요구는 2017년 북 ICBM 발사 이후 2년 만이다. 최근 미·북은 "김정은이 적대 행동하면 모든 걸 잃을 것"(트럼프), "우리는 잃을 게 없다"(김영철) 등 '말 전쟁'을 이미 시작했다. 트럼프가 목을 매는 미 대선과 김정은이 정한 '연말 시한' 일정이 겹치면서 한반도 위기 지수가 치솟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트위터에 "북이 비핵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여기에 의견 일치를 본 곳으로 '나토(NATO)·중국·러시아·일본·세계'라고만 거론했다.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비핵화를 말하면서 북핵의 최대 피해국이자 직접 당사자인 한국을 뺀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동맹국이다. 북한도 대한민국과 문재인 대통령을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한다. 지난 9월 북 정권 수립일 동영상을 보면 김정은이 트럼프, 시진핑, 푸틴과 만나는 모습만 나온다. 문 대통령과 세 차례 회담한 장면은 하나도 없다. '통편집'으로 무시한 것이다. 북은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 같은 막말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국 정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미·북 모두 문 대통령을 '투명 인간' 취급하고 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을 부풀려 전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과 북의 태도가 왜 다르냐"고 불평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김정은대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깨진 후 문 대통령 말을 들었다가 일이 어그러진 것처럼 핑계를 대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이 이런 식의 협상을 통해 북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희망 사고와 국내 정치적 욕심으로 전혀 생각이 다른 미·북 양쪽을 억지로 마주 앉혔다가 결국 뒤탈이 난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한국 대통령을 아예 제쳐 놓고 양자 간에 한반도 운명을 결정짓겠다는 태세다. 무모한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고 눈가림 합의로 북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이런데도 청와대는 집권 후 제일 잘한 일이 뭐냐는 질문에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킨 것"이라고 한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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