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영준이의 6년 된 가방

입력 2019.12.07 03:14

주희연 사회정책부 기자
주희연 사회정책부 기자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지난 4일 경남 김해에서 송영준(18)군을 만났다. 영준이가 들고 있는 성적표는 만점이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김해외고에 입학해 전교생 127등 중 126등에 그쳤던 영준이가 전국 1등이 됐다. 영준이는 "'수능 만점'의 행운을 가져다준 부적"이라면서 가방에 매단 장식을 보여줬다. 부적보다 낡은 가방에 눈길이 갔다. 오래 써서 천 구석구석이 뜯어지고 가방 손잡이는 해져서 덜렁거렸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고모가 사줬는데 6년간 매일 들고 다녔다. 영준이는 수능 보는 날도 이 가방을 메고 갔다. 영준이 어머니는 "평소 용돈 줄 형편이 안 돼 필요한 데만 쓰라고 그때그때 돈을 주는데, 가방 하나 사라고 해도 괜찮다고 안 사고 저 가방을 계속 들고 다닌다"고 했다.

영준이 사연에 일부 네티즌이 "어려운 살림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상대적 박탈감을 이겨내 대단하다"고 했지만, 영준이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집안 형편 생각해 공고로 전학 가려 했지만, 6년 동안 써서 이곳저곳 고장 난 가방을 부끄러워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영준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가장 고마운 건 공부 잘하는 게 아니라 엄마 앞에서 늘 웃어준 것"이라고 했다.

영준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새 영준이 어머니는 어려웠던 살림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다. "남편을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는데 엄마가 힘들까 봐 영준이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했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할 시간도 없었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던 아들이라고 했다.

영준이 어머니는 "없는 살림이지만, 우리 모자가 인복(人福)은 많다"며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편지를 꺼냈다. 수능 전날 영준이에게 학교 영양교사가 준 편지였다. "언제나 성실하고 인사성 밝은 널 보며 외고에 근무하게 된 게 자랑스럽고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어. 그동안 쌓아온 너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꽃길만 걷길 바란다." 평소 영준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지 않고도 느껴졌다.

영준이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이곳저곳에서 장학금, 생활비 등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연락이 계속 왔다. 영준이가 "고맙긴 한데, 영 부담스러운데요. 제가 이거 다 갚을 수 있을까요" 하자,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큰사람 돼서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면 된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돼서 갚아야 한다."

'노력해도 안 된다'며 자조하는 청년 세대가 만든 '노오력'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세태에서 "하면 된다"는 영준이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용이 되지 않더라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말 대신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용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영준이가 많은 어른을 부끄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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