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46% "자가용이 짐"… 마이카 시대 저물어간다

조선일보
입력 2019.12.07 03:00

[아무튼, 주말]
마이카 시대 30년 4044명이 답했다

일러스트=안병현
일러스트=안병현
중산층이 자가용차를 타고 나오자 가는 곳마다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엑셀, 프라이드, 르망, 스텔라, 쏘나타…. 서울에서 등록한 자동차는 30년 전에 처음 100만대를 넘었다. 1990년 1월 일이다. 교통방송(tbs)은 그해 첫 전파를 쏘았다. 이른바 '마이카(my car) 시대'가 열린 것이다. 차에 커버를 씌우며 애지중지했다.

30년이면 자동차를 두세 번은 바꿀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등록 자동차는 전국 2344만여 대(수입차 9.7%). 4인 가구가 3~4대를 굴리기도 한다. 하지만 자동차 증가 속도는 무뎌졌다. 2015년(4.3%)에 최근 10년의 극점을 찍었고 2016년 3.9%, 2017년 3.3%, 2018년 3%, 올해(6월까지) 1%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승용차 통행 속도는 지난해 평균 시속 23.9㎞로 2013년(26.4㎞)보다 내려갔다. 도심 구간에선 18.3㎞. '봉달이' 이봉주의 마라톤 기록(2시간 7분 20초, 시속 약 20㎞)보다 느리다.

'자가용 없이도 살 수 있다.'

'아무튼, 주말'이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한 설문조사에서 4044명 중 2309명(57%)이 이렇게 답했다. 응답자의 75%는 최근 한 달 사이 운전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인구 2.2명당 1대로 자동차가 많아졌지만 편리하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46%는 "자가용이 '짐'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마이카 시대의 종언(終焉)인가?

50대 남성은 정체를 질색한다

마이카 시대 30년 4044명이 답했다
지난 2~3일 20~50대 남녀가 이번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자가용이 불편한 이유로는 '유지 비용'(31%) '교통 체증'(30%) '주차난'(28%) '사고 위험'(10%)을 꼽았다. 연령과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40~50대는 '교통 체증'을, 20~30대는 '유지 비용'을 가장 버거워했다. 특히 50대 남성은 41%가 '교통 체증'을 으뜸으로 지목했다. 길이 막힐 때 가장 예민해지는 집단인 셈이다. 반면 50대 여성은 '주차난'(38%)을 가장 괴로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가 잘 돌지 않는 혈관처럼 정체는 만성적이다. 서울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등 도시고속도로에서도 종종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서울 중구, 영등포구, 종로구, 금천구 등지는 주차장 확보율이 80% 안팎에 그치고 있다. 지방 소도시도 저녁이면 골목길마다 차가 그득하다. 기차역 앞에선 가족을 태우러 오는 승용차가 많아 택시 기사들이 허탕 치기 일쑤다.

우리나라 주차 면적 최소 기준은 1990년에 정한 폭 2.3m였다. 미국(2.7m)이나 일본(2.5m)보다 한두 뼘 작았다. 문을 열다가 '문콕' 사고가 빈발했다. 올해 3월 이후 신축 건물부터 이 기준을 폭 2.5m로 늘리도록 하는 주차장법이 시행됐다. 설문조사에서 이 변화에 대해 묻자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10%, '체감하지 못하는 편이다'가 49%였다. 10명 중 6명은 여전히 좁은 주차장에서 후진 기어를 넣을 때마다 살짝 긴장하는 셈이다. 51%는 '문콕 사고를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자가용이 편한 까닭은 뭘까. 응답자들은 '시간 절약'(41%)을 1위로 꼽았다. '대중교통은 불편해서'(28%) '나만의 공간이라서'(22%) '아이가 있어서'(7%) 순이었다. '시간 절약'은 50대 여성(50%), '대중교통은 불편해서'는 20대 여성(32%), '나만의 공간이라서'는 20대 남성(26%), '아이가 있어서'는 30대 여성(13%)에게서 각각 다소 높게 나타났다.

자가용이 '짐'이라고?

마이카 시대 30년 4044명이 답했다
경기도 고양에 사는 회사원 김인영(가명·43)씨는 3년 전에 아예 자가용을 처분했다. 서울 광화문으로 출근하는데, 정체가 심할 때는 대중교통이 승용차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운전대를 놓고 버스를 탄 뒤로 날마다 시간을 버는 기분"이라며 "책을 읽을 수 있고 걷기 운동도 돼 심신 모두 좋아졌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남편 차를 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자가용이 '짐'이라는 생각도 드는지 묻자 '매우 그렇다'가 7%, '그런 편이다'가 39%였다. 합치면 46%. 지난 30년 동안 대중교통이 편리해졌다곤 하지만, 자가용 없이도 살 수 있을까? '매우 그렇다'가 9%, '그런 편이다'가 48%로 조사됐다. 자가용이 없어도 된다는 응답은 20대와 50대에서 약간 높았고 30~40대에서는 평균 이하였다. 자가용을 필수품으로 여기는 집단은 30대 남성(56%)으로 나타났다.

평소 직접 운전하는 데 대한 만족도(10점 만점)를 물었다. '7점'과 '8점'이 각각 26%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9점 이상'이 12%, '6점'이 11%였다.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만족감이 높아졌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가용을 소유하는 시대는 저물어간다"고 말했다. '소카'나 '타다' 같은 렌터카·공유차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생산자들이 자동차를 제조하고 진열해 팔면서 시장을 부양했지만 그 시대는 끝나간다. 공유 경제가 오기 전부터 소비자와 취향 중심으로 판도가 바뀌었다."

이제 환경과 안전, 자율주행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한 이후 풍향이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에서는 50~60대가 신차를 사고, 구매력이 부족한 20~30대는 중고차를 사는 형태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한국 시장도 이 경로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서는 작년에 신차가 1700만대 팔렸고 중고차 판매량은 최초로 4000만대를 돌파했다. 지난해 국내 중고차 거래량은 380만대. 신차 판매(약 180만대)의 2배가 넘는다.

노인도 마지막 차 아니다

'서울에서 자가용은 값어치를 하나?'

미국 소셜미디어 사이트에 최근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추천 수가 가장 많은 답글은 '서울은 세계에서 대중교통이 아주 잘 구축된 대도시 중 하나다. 운전석에 앉으면 막힌 길이 뚫리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잦다. 주차장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연료비와 유지비, 보험료와 수리비도 많이 든다'였다. 결론은 소유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마이카 시대가 개막한 1990년대에 운전면허를 딴 40~50대는 이제 70~80대가 됐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2020년에 400만명, 2025년엔 7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도로교통공단은 전망한다.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해마다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8월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 관련 사고는 2014년 2만275건에서 2018년 3만12건으로 불어났다. 지자체들은 노인들을 향해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현금이나 상품권 등을 주겠다"고 손짓한다.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이 혜택을 받은 고령 운전자는 5만3263명. 지난해(1만1916명)의 5배 가까이로 폭증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차"라고 고령 운전자들은 말한다. 과연 그럴까. 정부는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점을 2027년으로 3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산업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과 공유 경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르면 3~5년 안에 고속도로처럼 고령 운전자들이 어려워하는 구간에서는 자율주행이 필수가 된다"며 "그들도 자율주행차로 한 번 더 갈아탈 수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그 시대가 개막하면 표지판이나 교통 체계를 바꿀 필요가 없어진다. 고령 운전자에게 면허 자진 반납 대신 자율주행차 구매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될 수도 있다.

'타다' 갈등을 비롯해 이 과도기를 지나 공유 경제로 패러다임이 바뀌면 한 가구에 2~3대씩 차를 굴릴 필요가 없어진다. 이호근 교수는 "자가용 2대 값을 합쳐 똘똘한 자율주행차 1대를 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주차장도 쓸모가 줄어든다. 자율주행차가 한 사람을 회사까지 태워다 주곤 알아서 돌아다니며 가족이나 친구가 다른 일을 보게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카 개념부터 달라지는 세상이 오고 있다.

방탄소년단 가방 덕분에… 주목 받는 폐차 재활용산업
폐차 가죽시트 업사이클링해 만들어 재활용 활성화 땐 2조~3조원 시장


한 폐차장에 폐차가 가득 쌓여 있다. 국내 폐차량은 연간 약 90만대 수준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한 폐차장에 폐차가 가득 쌓여 있다. 국내 폐차량은 연간 약 90만대 수준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자동차는 부품 약 2만5000개가 결합해 탄생한다. 검수 과정을 거치고 신차 판매장에서 주인을 만난다. 1년 주행거리는 보통 1만㎞ 안팎이다.

사람처럼 자동차도 수명(약 15~20년)이 있다. 폐차 시기는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둘 중 하나다. 20만㎞쯤 달렸거나 폐차 비용보다 수리비가 많이 들거나.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협회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연간 50만대 수준이던 폐차 대수가 2016년 79만대, 2017년 88만대, 2018년 89만대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년에 90만대라면 하루에 2465대가 생을 마감하는 셈이다.

폐차장은 차의 무덤이다. 하지만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 입고된 차는 범퍼, 엔진과 변속기, 차축, 타이어, 배터리, 가죽 시트 등을 분리한다. 장기(臟器) 적출과 비슷하다. 액상 폐기물과 냉매 가스를 회수한 뒤 차피는 압축한다. 차피란 부품 재활용을 위해 내장을 들어내고 살을 발라내고 남은 흉곽, 즉 차 껍데기다. 압축한 차피는 파쇄 과정을 거치고 고철과 비고철은 회수한다.

'굿바이! 카'를 펴낸 남준희 굿바이카폐차산업 대표는 "1992년식 국민차 티코가 들어왔는데 2000년에 단종된 차라 해체하기 아쉬웠다. 6개월 동안 폐차장 마당에서 고객을 기다리다 결국 머나먼 아프리카 가나로 떠나보냈다"며 "통째로 나가면 운임이 많이 들어 운전석까지 잘라서 엔진·변속기를 포함한 앞부분, 뒷문과 범퍼만 내보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BTS) 리더인 RM(김남준)의 가방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폐차 가죽 시트를 디자인을 가미해 재활용한 업사이클링(upcy cling)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폐차 산업은 연간 약 4000억원대인데 재활용 산업을 활성화하면 2조~3조원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는 노후 경유차를 조기 폐차하면 보조금(평균 161만원)을 준다. 서울시도 미세 먼지 저감 대책으로 지난 1일부터 중구·종로구 등 녹색교통지역(약 16.7㎢)에서 배출 가스 5등급 차량(노후 경유차) 운행 제한에 들어갔다. 걸리면 과태료 25만원을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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