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꿀벅지로 꽃 피워라!

조선일보
  •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입력 2019.12.04 03:01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옛날에 한 수도원에 늙은 수도승이 살고 있었단다. 그는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산에 심고 제자에게 말했지. 나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매일같이 물을 주도록 해라. 그렇게 3년 동안 물을 주다가 어느 날 나무에 온통 꽃이 만발한 것을 발견했단다. 끝없이 노력하면 결실을 얻는 법이지.'

러시아가 배출한 세계적인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1986년 영화 '희생'. 늙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함께 바닷가에 서 있는 앙상한 나무 한 그루에 물을 주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잡으며 시작되는 이 오래된 흑백영화는 신과 인간, 그리고 구원과 희생을 이야기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무는 다시 등장한다. 고목에 꽃이 피는 기적이 일어났을까?

내겐 책 두 권을 써낸 일이 마치 고목에 꽃을 피워낸 듯한 일이었다. 런던 윔블던의 작은 내 방, 이국땅에서 혼자 컴퓨터 모니터를 마주하고 보냈던 그 밤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영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책을 쓰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맵시 나는 가죽 가방 대신 차가운 샌드위치 달랑 들어 있는 가난한 가방을 메고 정처 없이 런던 골목들을 쏘다니다가 셰익스피어가 남긴 자취를 만났고, 그 길들로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고 이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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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써내려간 글들이 어느새 원고지 900장. 그렇게 세상에 나온 첫 책이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이다. 첫 책이 나오고 7개월 만에 두 번째 책 '이럴 때, 연극'이 나왔다. 나는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는 비밀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무를 다시 살려보려는 수도승의 의지보다 중요한 건, 매일매일 조금씩 물을 길어 나무로 걸어가는 발걸음. 그 발자국이 쌓여 꽃은 피었다.

어느새 12월, 한 해가 저문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의지 몇 가지 다질 때다. 한 달 후로 미루지 말고 그 시작의 발걸음을 지금 바로 옮겨보는 게 어떨까. 오늘 아침에도 뉴스를 틀고 TV 앞에서 스쿼트 자세를 잡았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30개를 간신히 했는데 어느새 100개도 너끈하다. 꿀벅지로 꽃 피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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