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36] 자기 생각 없는 '귀여운 사람들'

조선일보
  •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19.12.04 03:12

김규나 소설가
김규나 소설가

무엇보다 최악은 자기 생각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했지만 그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극장 지배인 쿠킨이나 목재상 바실리나 수의사 스미닌과 함께라면 그녀는 모든 일을 설명할 수 있었고, 그럴듯하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머리와 가슴은 텅 빈 뜰처럼 공허했다. 그것은 아주 씁쓸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 중에서.

올렌카는 자기 생각이란 걸 가져본 적 없다. 극장 관리인과 결혼했을 때는 연극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목재상과 재혼한 뒤로는 나무야말로 삶에 가장 필수적인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두 번째 남편마저 잃고 수의사와 가까워진 올렌카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축을 잘 관리하는 일이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가 1899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은 타인의 감정에 곧잘 동화되어 사랑에 빠진 뒤 그 사람 생각과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타인의 의견에 함몰되고 얼마나 자주 자신의 판단과 결정까지 남에게 의지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

남편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는 올렌카를 사람들은 '귀여운 여인(darling)'이라고 불렀다. 자기주장 없이 순하게 졸졸 주인만 따라다니는 강아지처럼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사랑할 대상을 찾을 수 없게 된 그녀는 주인 잃은 애완견처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 고통스러워한다.

사랑 없인 하루도 살 수 없는 여인의 속성에 대한 소설로 해석하곤 하지만 어찌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거리를 걷거나 가족과 밥을 먹거나 친구들과 만났을 때에도 스마트폰과 TV를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소셜네트워크와 유튜브, 언론이 선정한 톱기사 등을 통해 정보뿐 아니라 주장까지 받아들인다. 그들의 의견을 자기 생각인 줄 착각한다. 체호프 표현대로라면 온통 '귀여운 사람' 천지다. 내 생각이 사라진 세상, 고요하고 깊은 사색과 통찰의 힘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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