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의 아웃룩] 닛산, 카를로스 곤의 수렁에 빠졌나

입력 2019.12.04 03:13

佛 르노, 닛산과 완전 통합 추진하자 일본측 막는 과정서 곤 표적
닛산 상반기 이익 작년보다 85%↓… 1만2500명 정리해고 계획도
실적 계속 나쁘면 르노 간섭 불가피… 日 자동차업계 재편說도

최원석 국제경제 전문기자
최원석 국제경제 전문기자
영화 '블랙머니'가 국내 개봉 19일 만에 230만 관객을 모았다. '헐값 매각에 먹튀' 논란의 대명사가 된,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사건을 다뤘다. 영화는 '엔딩'이 있지만 실제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16년이 흘렀는데도 한국 정부와 론스타는 법정 공방 중이다. 론스타 사건은 망할 위기에 처한 기업 살리기에 외국 자본이 등장했을 때, 얼마나 파괴적이고 괴이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진행 중이다. 글로벌 비즈니스계에서 으뜸 경영자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이 전격 체포·기소된 사건이다. 한국처럼 정부와 검찰이 나섰고, 한국처럼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다. 곤을 쳐낸다고 닛산을 사실상 지배(지분 43.4%)하는 르노를 떼어낼 묘수가 없다. 르노와 결별에 성공한다 해도 격변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닛산을 살릴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갖출 수 있을지 미지수다.

르노와 닛산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프랑스 르노가 도산 위기의 닛산 지분을 사들여 재건에 나섰다. 최고경영자로 곤이 파견됐다. 그는 1999년 7000억엔에 달했던 적자를 이듬해 3000억엔 흑자로 반전시키는 '마법'을 부렸다. '코스트 커터'라는 별명답게 철저한 비용 절감에 나선 결과였다. 그는 일본에서 신적(神的) 존재가 됐다. 그러나 곤의 '독재'가 20년간 계속되면서 일본 내 불만이 커졌다. 그가 과도한 연봉을 챙기고 르노에 더 이익이 되는 경영 판단을 한다는 등의 이유였다. 르노가 닛산을 완전히 통합하려고 시도하면서 닛산과 일본 정부 우려는 더욱 깊어졌다. 이러는 사이 곤 회장의 전격 체포가 이뤄졌다. 르노에 모든 걸 뺏길 것이라 판단한 일부 일본 경영진과 정부가 연합해 르노의 대리인을 쳐낸 것이 곤 체포극의 본질이라는 해외 언론들의 분석이 나왔다.

日 민관(民官) 연합이 행동 나선 정황

최근 일본 언론들은 곤 사건이 국책(國策) 수사였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도쿄신문은 "르노의 최대 주주인 프랑스 정부가 르노에 '닛산을 완전 통합하라'고 압박했는데, 일본이 이를 막는 과정에서 곤이 표적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산업성 고위 관료 출신이 곤 체포 5개월 전인 작년 6월 닛산 사외이사로 온 사실이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고 했다. 이 사외이사는 곤 혐의를 검찰에 알린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닛산 사장과 사건 전후로 긴밀히 소통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지 크게보기
/사진=AFP 연합뉴스

도쿄지검 특수부가 곤을 체포하기 4개월 전 아베와 가까운 검찰 인사가 도쿄지검 고위직에 부임한 것도 큰 그림 속에서 사전에 치밀하게 짠 각본에 따른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검사는 아베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으로, 아베가 총리에 오른 2012년 말부터 검찰 형사 부문 요직을 두루 거쳤다.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전 일본 총리)와 닛산의 깊은 관계가 '국책 수사' 배경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한 매체는 "기시와 (닛산그룹과 히타치그룹의 모태인) '일본산업콘체른'의 설립자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가 특수 관계였다"면서 "아베가 기시의 맹우(盟友)가 창업한 기업에 특별 배려를 한 것"이라고 썼다.

곤 "결사 항전"… 닛산 홀로서기 불투명

하지만 일본 뜻대로 일이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곤은 결사 항전할 자세다. 지난달 곤 변호인은 "곤 기소는 불법"이라며 "내년 봄 열릴 재판에서 검찰이 주장한 네 혐의가 모두 근거 없는 것임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도쿄지검은 작년 11월 1차 체포 때 곤이 보수 중 50억엔(퇴임 후 고문료)을 유가증권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혐의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설명이 의혹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검찰이 이런 사유로 임원을 기소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곤 변호인은 "고문료 계약은 퇴임이 결정돼야 체결이 검토되기 때문에 유가증권 보고서 기재가 불가능하다"며 전면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의 과잉 수사, 인권침해 논란도 일본에 부담이다. 곤은 모두 4차례 다른 혐의로 체포·구속됐는데, 독방에 갇힌 지 몇 주 뒤에야 겨우 10분간 판사 앞에서 진술서를 읽을 수 있었다. 허리를 밧줄로 묶이고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법정에 나왔다. 외신들은 "곤이 변호사 없는 심문, 가혹한 수감 조건, 가족 방문 금지, 악의적 언론 플레이에 고통받았지만 항변 기회는 거의 얻지 못했다"고 했다. 도쿄지검은 "제도와 문화가 다르다고 비판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반박했지만 비판은 잦아들지 않았다.

재판 결과가 예측 불허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4월 변호사, 법학 교수 등 1010명은 "검찰이 곤 회장의 혐의를 명백하게 밝히지 못함에 따라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는 것 아니냐"며 "곤 사건과 같은 인권침해 수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곤 체포극이 일본 자동차 업계 재편의 서곡이라는 분석도 있다. 르노의 닛산 통합을 차단한 뒤, 닛산과 혼다를 제휴시켜 도요타 연합과 양강 체제를 만든다는 시나리오가 업계에 돌고 있다. 이미 도요타는 스바루·마쓰다·스즈키와 자본 제휴해 연 1600만대 연합을 결성했다.

그러나 경영 중심을 잃은 닛산이 실적 부진에 빠지면서 모든 게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4~9월)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85% 줄었다. 1만2500명 정리 해고 계획도 발표했다. 블룸버그는 "1년간 닛산 시총 가운데 3분의 1인 1조3700억엔(약 14조8000억원)이 사라졌다"고 썼다. 실적이 계속 나빠지면 르노 간섭을 막을 수 없다. 곤 축출은 성공했지만, 닛산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