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하의 런던이야기] [11] 런던브리지 수난사

조선일보
  •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입력 2019.12.04 03:12

예전에 한국 꼬마들은 '남대문놀이'를 했다. 두 아이가 손을 맞잡고 아치를 만들면 그 밑을 다른 아이들이 지나가며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노래를 불렀다. 영국에도 이런 전래 동요가 있다. '런던 다리 무너진다, 무너져, 무너져(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falling down)…'라는 가사다. 이 노래를 들으면 영국인들은 어린 시절로 급속히 빨려 들어간다.

이 동요 배경인 런던브리지에서 또 테러가 터졌다. 2017년에도 테러가 있었다. 웨스트민스터브리지 테러까지 치면 최근 몇 년간 런던의 테러는 거의 다리에서 터졌다. 인터넷에서 런던브리지를 검색하면 절반 이상 '타워브리지'가 뜬다. 다리 중간이 갈라져 양쪽으로 들리고 배가 지나가도록 한 도개교(跳開橋)로 독특한 구조와 기능, 디자인으로 런던의 상징적 다리로 떠올랐다. 하지만 런던브리지 동요의 주인공을 찾고 싶다면 여기서 850여m 상류로 가야 한다.

런던브리지 그림

템스강 33개 다리 중 가장 오래된 올드 런던브리지는 런던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1750년 웨스트민스터브리지 등장 때까지 템스강의 유일한 다리였다. 로마인이 처음 다리를 세웠지만 곧 무너졌고, 이후 색슨족이 세운 목조 다리도 홍수에 떠내려갔다. 12세기에 돌다리가 세워졌고, 19세기 대리석 다리가 세워졌다가 폭이 좁다고 해서 1973년 현재의 평범한 시멘트 다리가 다시 세워졌다.

중세 때 지금은 '시티(City)'라고 하는 금융 중심지 올드 런던에는 주택, 공방, 교회만 있을 뿐 술집 등 유흥·놀이 공간이 없었다. 금욕을 강요한 기독교 교리 때문이다. 런던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런던브리지를 건너 서더크(Southwark)로 가서 먹고 마시고 즐겼다. 당시 런던브리지 위엔 가게와 여관 등이 들어서 있었다〈그림〉. 이 다리는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가 묘사했듯 성지순례 등으로 유럽에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었고 상업의 요충지였다. 런던브리지는 공포의 장소이기도 했다. 런던탑에서 처형된 사형수 머리를 장대에 높이 매달아 대중에게 경종을 울리는 효시경중(梟示警衆)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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