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02] 발가벗은 여인을 훔쳐보는 이들의 위선

조선일보
  •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입력 2019.12.03 03:12

한 여인이 끔찍한 죽음과 지옥의 마귀 사이에 서 있다. 왕관을 쓰고 샌들을 신었으되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살피느라 바로 옆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허영'의 상징으로,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힌 영혼이 닿을 곳은 지옥뿐이라는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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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멤링, 허영심, 1485년경, 나무판에 유채, 각각 22x15, 스트라스부르 미술관 소장.
한스 멤링(Hans Memling·1430년경~1494년)은 당대 문화의 중심지였던 벨기에 브루게 최고의 화가였다. 필사본 삽화의 전통을 이어 마치 돋보기로 들여다본 듯 치밀하게 묘사한 세부와 서정적 풍경의 조화는 종교화뿐 아니라 초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브루게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와 멀리 스페인에서도 고객들이 찾았던 덕에 멤링은 1480년 브루게 부호 875명의 명단에 들어갈 정도로 부를 쌓았다. 이 작품 역시 볼로냐의 정치적 실세였던 로이아니가(家)의 주문을 받은 것이다.

노트 한 면보다도 작은 이 그림들은 경첩으로 연결되어 눈앞에 펼쳐두고 혼자서 명상과 기도를 하기 위한 개인 용도의 제단화처럼 사용됐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젊은 여인의 나체를 손에 들고 기도가 잘됐을지는 의문이다. 1972년 영국의 평론가 존 버거는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이 그림을 두고 자기의 쾌락을 위해 벗은 여자를 그려 놓고 거울 하나를 쥐여준 다음 허영이라고 비난한다며 보는 이들의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실제로 이 그림은 누드화의 역사에서도 이례적일 정도로 신체 묘사가 자세하다. 과연 여인을 낱낱이 발가벗기고 부정하다며 손가락질하면서 정작 훔쳐보는 즐거움에 빠졌던 이들이 지옥을 피해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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