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청와대에 드리운 ‘검은 망토’

입력 2019.12.02 18:25 | 수정 2019.12.02 19:36


‘백원우 부하’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운영했던 이른바 ‘백원우 별동대’에서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이 일요일 오후 숨진 채 발견됐다.

올해 48살인 검찰 수사관 A씨. 전북 전주 출신으로 9급 공무원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정보 수집과 수사에 아주 뛰어난 솜씨를 보여 ‘에이스’로 통했던 A씨. 에이스였던 만큼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도 청와대에 파견근무를 했고, 이번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도 청와대 민정실에 발탁됐던 것이다. 이 사람은 올해 서울서부지검으로 복귀 발령이 났다가 올해 하반기 들어 서울동부지검으로 옮겼다. 이곳 형사6부에서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이 사람은 왜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

일단 이 사람이 얼마나 깊은 심리적 부담을 느꼈을지 단적인 정황이 있다. 이 사람은 올 초 검찰에 나가서 이렇게 말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비리 의혹 수사와 관련해 울산에 내려간 적이 없다." 이 사람은 ‘울산에 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엊그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민정비서관실 소속 감찰반원이 지방선거 직전 울산에 내려간 사실’ 자체를 시인해버렸다. 노영민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울산 검경이 갈등을 빚었던 고래 고기 사건 때문이었다." 원래 민정비서관실은 대통령 친인척 담당이다. 그러자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고래가 어리둥절할 일이다." "대통령의 친인척을 관리하는 민정수석실의 백원우 직할 별동대가 느닷없이 고래 때문에 울산 방문이라니, 고래가 대통령 친인척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냐."

자, 검찰 수사관으로 에이스였던 A씨. 이 사람은 ‘문재인 청와대’에서 1년 반가량 근무한 뒤 검찰로 복귀했는데, 그리고 ‘울산 시장 하명 수사 및 선거 개입·공작 사건’에서 ‘몸통’이 아닌 ‘깃털’에 불과한 사람인데 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이 사람은 내일모레면 쉰이다. 아들이 명문대 입학 면접을 치렀다. 지난 토요일 저녁 때 가족들과 축하하는 식사 모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가 일요일 오후 3시9분쯤 서초동에 있는 지인의 법률 사무실에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런 입장문을 발표했다.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봉직하면서 강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근무해 오신 분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여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살아왔고, 책임감 있고 성실한 이 남자, 이제 자식이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된 이 남자가 목숨을 끊었다. 유서를 남겼는데, A4 용지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 종이에 9장 가량 큼지막한 글씨로 작성했다고 한다. 주로 아내와 자녀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미안하다’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이 사람은 검찰에 출두하기 3시간 전에 숨진 채 발견됐는데, 검찰은 이런 내용을 물을 예정이었다. "(울산 시장 비리에 관한) 해당 첩보를 어떻게 생성했는가?" "울산에는 누구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고 갔는가?" 즉 검찰은 ‘깃털’인 이 사람에게 ‘몸통’의 이름을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사람은 검찰 수사관으로서 검찰에 대한 의리도 있고, 동시에 같이 일했던 청와대 민정실 사람들에 대한 의리도 있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인간적 의리’가 울산 시장 선거 불법 개입 사건을 검찰이 본격 수사하는 과정에 정면충돌하자 본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사람은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전화를 많이 해왔다"며 괴로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사람은 한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내 잘못으로 몰아간다. 나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려는 것 같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는 뜻이다. 주변에서는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박형철 대통령 반부패 비서관도 검찰 조사에 협조했다. 당신도 있는 그대로 검찰에 진술하는 게 어떠냐." 그렇지만 이 사람은 검찰에 출두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비리 의혹이 연일 보도되자 관련자들이 차례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러자 프랑스의 유력지 르 포엥은 검은 만장이 덮인 듯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엘리제궁을 표지사진으로 쓰고, ‘검은 엘리제’라는 특집 제목을 달았다. ‘죽음의 검은 망토가 엘리제궁을 덮고 있다’는 보도를 한 언론도 있다. 미테랑의 오랜 친구인 이 사람에 대해 그곳 언론들은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을 것’, ‘대통령을 둘러싼 여러 가지 스캔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상황에서 그는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불필요한 존재’였을 수 있다. 보기에 따라 오히려 ‘위험한 인물’이 된 것이다. 본인도 이러한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어느새 미테랑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목숨을 끊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소속이었던 검찰 수사관은 무엇이 두려웠을까. 윤석열 총장에게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 사람은 이제 자신이, 자신의 입이 ‘몸통’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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