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욱의 스타트업 세계] 대기업 대신 스타트업 엑시트 돕는 '선배 스타트업'

조선일보
  •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입력 2019.12.02 03:12

스타트업의 스타트업 인수, 2017년 4건→작년 16건으로 늘어
'야놀자'는 호텔나우·레저큐, '직방'은 호갱노노·우주·네모 인수
대기업, 수직 문화·리스크 회피·정보 둔감 등으로 인수 소극적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벤처 투자금은 사상 처음 4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불과 5년 전인 2014년 1조6000억원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활동 부족, 그중에서도 M&A(인수·합병) 부족이다. 미국의 엑시트는 금액으로 보면 절반이 기업공개(IPO), 40%가 M&A이다. 횟수로는 전체의 80% 정도를 M&A가 차지한다.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IT 기업은 물론 월마트, GM 같은 전통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을 인수한다.

대기업, 스타트업 인수 사례 드물어

한국의 경우 2018년 기준 전체 회수 금액 2조7700억원 중 IPO는 32%였고, M&A는 2.5%에 불과하다. 회수의 절반 정도는 후속 투자자가 선행 투자자의 주식을 매수하는 장외 매각으로 이뤄졌다. M&A 비중이 작다는 것은 한국 대기업이 그만큼 스타트업 인수를 주저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5년간 국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거액으로 인수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2015년 카카오가 김기사앱으로 유명한 록앤올을 626억원에 인수한 게 널리 알려진 정도다.

왜 그럴까. 대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이나 이익이 아직 안정적이지 않은 스타트업을 가능성만 보고 거액에 인수해 성장시키는 것은 큰 모험이다.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의 스타트업을 인수해서 수직적 문화의 본사와 결합시키는 것도 어렵고 스타트업의 핵심 인재도 떠날 수 있다. 대기업의 담당 임원 입장에서 수백억원 규모의 돈을 쓰고 스타트업을 인수했다가 실패하면 목이 날아갈 수 있다. 또 대기업은 외부 기술을 사서 쓰기보다 계열사 등을 시켜 그대로 만드는 것에 익숙하다. 직접 만들면 될 것을 굳이 외부에 비싼 값 주고 사올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이 팽배하다. 여기에 공정거래법, 금융회사의 지배 구조에 대한 법, 노동법 등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인수할 때 겪는 규제 문제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은 스타트업 정보에 어둡고, 변화에 둔감하다. 좋은 스타트업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는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전혀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굼뜬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모델이다. 수백억~수천억원 투자금을 유치해 자금력이 두둑해진 스타트업이 앞장서 좋은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조사 결과 스타트업의 스타트업 인수 건은 최근 몇 년간 10건을 넘지 못하다 작년 16건으로 큰 폭으로 늘었고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회사가 올 초 해외 자본으로부터 2000억원을 투자받은 야놀자다. 2005년 창업한 야놀자는 종합 숙박 예약 및 레저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야놀자는 숙소 검색 서비스로 출발한 이후 모텔 예약 서비스와 프랜차이즈로 사업을 확장했고, 2016년 당일 호텔 예약 서비스인 호텔나우를 인수했다. 작년에는 각종 레저 활동 관련 플랫폼인 레저큐를 인수해 여가 활동 영역으로 지평을 넓혔다. 올해 펜션 예약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펜션을 인수했다. 호텔 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해서 숙박 비품 유통 기업인 한국물자조달을 인수했고, 객실 운영 효율화를 위해 객실 관리 자동화 시스템을 만드는 1·2위 기업 가람과 씨리얼을 인수했다.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해 동남아 호텔 체인인 젠룸스를 인수했다.

2012년 원룸 검색 서비스로 시작한 직방의 경우 아파트 실거래 플랫폼인 호갱노노, 공유하우스 우주, 상업용 부동산 플랫폼인 네모까지 잇따라 인수했다. 이 같은 인수는 2000억원이 넘는 누적 투자금 확보로 가능했다. 리디북스 전자책 플랫폼으로 유명한 리디의 경우 도서 마케팅 회사 '책끝을 접다', IT 미디어 아웃스탠딩 인수에 이어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서비스 라프텔을 인수했다.

스타트업界 "생태계 구축해 힘 합쳐야"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달 열린 테크미츠스타트업 콘퍼런스에서 쏘카의 위현종 CSO(최고전략책임자)의 설명은 이렇다. 쏘카는 차량 공유 서비스인 쏘카와 온디맨드 서비스인 타다를 운영하면서 연 900만건의 이동 서비스를 제공한다. 차량, 관제, 모바일 앱, 주차 거점 확보, 차량 관리, 차량 보험, 차량 파이낸싱, 데이터 분석 등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를 하는 만큼 더더욱 쉽지 않다. 위 CSO는 "혼자서 할 수 없다. 생태계를 구축해서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결국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회사를 찾아 투자하거나 인수하기로 했다. 쏘카는 2018년 4월부터 1년 6개월간 라이드플럭스, 차케어, 일레클에 투자하고 VCNC와 폴라리언트를 인수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스타트업끼리 시너지가 발생한다. 스타트업 연합을 만드는 것이다. 직방 안성우 대표는 "매출이 전혀 없던 호갱노노를 거액을 주고 인수하겠다고 하자 투자자들의 반대가 심해 설득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수 후 고급 개발 인력 확보, 상호 간 교차 마케팅 등 시너지가 발생했다. 호갱노노의 트래픽은 3배가 늘었다.

구글은 설립 이후 200곳이 넘는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구글이 핵심 서비스인 검색을 넘어 모바일, 동영상 등에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안드로이드, 유튜브 같은 스타트업을 품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 와츠앱을 인수한 것도 처음에는 비판이 많았지만 이제는 '신의 한 수'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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