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라이프] 차마고도·백두산… 중국에 몰아치는 마라톤 狂風

입력 2019.12.02 03:13

박수찬 베이징 특파원
박수찬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주말을 맞아 은행나무 숲으로 유명한 베이징 올림픽산림공원을 찾았다. 짧지만 눈부신 베이징의 가을을 만끽하러 나온 사람들 사이로 배에 번호표를 단 사람들이 우르르 달리고 있었다. 이날 멕시코 식품 회사 빔보가 연 '건강 미니 마라톤' 대회엔 3000여명이 참가했다. 2주 후 같은 장소에선 베이징자동차가 주최한 '친환경에너지 로큰롤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중국인들의 마라톤 '사랑세(勢)'가 폭발적이다. 중국육상협회에 따르면 풀코스·하프코스를 완주한 마라톤 인구는 2016년 69만명에서 지난해 114만명으로 2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마라톤 대회는 2013년 39개에서 2015년 134개, 지난해 1581개가 됐다. 작년 하루 평균 4개 대회가 열린 셈이다. 겨울도 예외가 아니다. 마라톤 대회 정보 사이트인 '아이란사오'를 검색하니 12월에 열리는 대회만 64개였다. 차마고도가 있는 윈난성 해발 2500m를 달리는 산악 마라톤부터 지린성 퉁화에서 열리는 백두산 빙설(氷雪) 마라톤까지….

중국인은 왜 마라톤에 빠진 것일까? 인민일보는 지난해 마라톤 열기를 다룬 기사에서 "마라톤이 (생활 속) 초조함에 저항하는 한 방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빠르게 변하는 중국 사회에서 마라톤을 통해 "노력만 하면 완주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해석이다.

중국 마라톤 붐의 기초 토양은 높아진 소득이다. 전문가들은 "통상 1인당 국민소득(GDP)이 1만달러를 넘어서면 마라톤 붐이 인다"고 했다. 중국 1인당 GDP는 지난해 9776달러였고,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는 2만달러를 넘어섰다. 건강과 삶의 질을 따지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교수인 중국인 위조관씨는 올해 마라톤을 시작했다. 봄에 4번, 가을에 4번, 총 8번 뛰었다. 위씨는 "사춘기 아들에게 운동 습관을 길러주고 나도 건강을 챙기려고 시작했다"며 "가족 여행 삼아 지방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라톤 경제도 함께 성장했다. 중국의 대표적 온라인 쇼핑몰 '징둥'에서 '마라톤'을 검색했더니 약 46만개 상품이 떴다. '마라톤 바지·반바지' 18만개, '마라톤 신발' 14만개, '마라톤용 허리 가방' 8만개였다.

마라톤 열풍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도 큰 몫을 차지한다. 중국 정부는 국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마라톤을 장려하고, 대회를 개최하는 지방정부와 기업, 학교에 각종 지원을 쏟아내고 있다.

베이징마라톤
/Beijing Marathon 페이스북
마라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큰 대회들은 참가 자격을 제한하거나 출전권을 추첨하기도 한다. 이달 초 베이징마라톤〈사진〉에는 3만명 정원에 10만명이 몰렸다. 매년 다섯 번씩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는 회사원 차오치씨는 "코스를 완주하는 것보다 참가자 추첨에서 당첨되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급격한 성장'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난다. 주최 측 운영 능력이나 참가자들의 스포츠맨십 부족 때문이다. 2016년 광둥성 칭위안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는 참가자 2만명 가운데 1만2000명이 치료를 받고 구급차가 23회 출동했다. 주최 측이 나눠준 포도향 비누를 일부 참가자들이 에너지바로 착각해 먹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광둥성 선전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200명 넘는 사람이 실격을 당했다. 코스를 이탈해 지름길로 가거나 다른 사람의 경기 기록 장치를 들고 뛴 경우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사람은 공유자전거(중국 길가에 흔한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타고 달린 여성 '마라토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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