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참여 시민에게 수학이 무슨 필요가 있어?"

입력 2019.12.02 03:15

중3 수포자 5년 새 2배 늘어
생각하는 힘 가르치는 게 수학…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는 수렁으로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중3 수포자, 수학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12%라는 뉴스가 주말에 있었다. 5년 전의 5.7%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예전 중학생 때 수학 선생님이 떠오른 것은. 별명은 스파이크. 체벌이 금지된 요즘에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그는 학생의 뺨을 때리기 전에 반드시 도약을 했다. 맞을 때마다 육두문자가 절로 튀어나왔지만, 졸업하고 나서는 가끔 고마웠다. 선생은 답이 맞더라도 식(式)을 쓰지 않으면 정답으로 치지 않았다. 식을 썼더라도 틀리면 예의 점프를 했다. 그는 말했다. "수학은 답을 맞히는 학문이 아니야, 답까지 이르는 논리적 과정을 보는 학문이지."

얼마 전 상극의 경험을 했다. 사직동 서울시 교육청 근처 식당이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반주로 불콰해진 얼굴들이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참여시민 만드는데 수학이 무슨 필요가 있어,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만 하면 되지. 촛불 시민이 수학을 배워야 할 이유가 뭐냐고! 민주주의는 수학으로 피는 꽃이 아니야…." 교육과정·심의위원·개정 등의 단어가 어지럽게 뒤섞이는 가운데, 수학 전공자인 듯한 30대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그래도 어떻게 수학을 안 가르쳐요, 이건 생각하는 힘을 가르치는 학문인데…."

교육부는 2018년부터 고교 1학년에게 적용한 10차 개정 수학교육 과정에서 선형대수(행렬·벡터)를 뺐다. 명분은 학습 부담 경감. 물론 고교생 모두가 수학자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행렬과 벡터가 4차 산업시대 교육의 핵심이라는 데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학자 중 한 명일 길버트 스트랭 MIT 수학과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AI의 두뇌인 알고리즘 작성과 빅데이터 처리의 필수 과목은 선형대수라고 단언했다. 그가 온라인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선형대수 강의를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00만명이 수강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역주행 중이다.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에 따르면, 행렬 이수 고교생은 2015년 54만8132명에서 2019년 1만179명으로 급감했다. 바뀐 과정으로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이 고3이 되는 내년에는 없다. 말 그대로 0명이다.

앞서 언급한 '기초학력 미달' 뉴스는 올해 6월 전국 중3, 고2를 대상으로 치른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다. '미달'은 그 과목 교육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인데, 중3의 12%, 고2의 9%였다. 낙제한 친구들의 숫자가 그 정도니, 수학에 좌절 중인 학생들까지 포함하는 '수포자' 수치는 더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같은 뉴스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수학 실력은 최근 10년 동안 연속 추락 중이다.

수학 선생님들 사이에 이런 격언이 있다고 한다. 장래에 수학자가 되지 않을 학생들에게 수학 교육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며 가르치라고. 누군가는 이를 촛불 시민에게 수학 따위는 필요 없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모양이지만, 수학자가 되지 않은 필자의 체험으로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에게 더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이야말로 인간이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학문이니까.

얼마 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본지 문화면에 실려 반가웠다. 생각 없이 살기 싫어 취미로 수학을 한다는 비전공자들의 고백이었다. 포털과 유튜브 가짜 뉴스의 무분별한 흡수를 거부하게 되고, 사고력과 논리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일종의 간증들이다.

민주주의는 수학으로 피는 꽃이 아니라는 주장에 충격받고 시작한 글이지만, 수학 교육이 진영 논리의 문제일 수는 없을 것이다. 좌건 우건 마찬가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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