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인데 브랜드는 26種… 성분 같은데 2배 넘게 가격 차이도

입력 2019.11.30 03:00 | 수정 2019.12.02 17:12

[아무튼, 주말]
한 우물·다른 상표… 생수 시장의 진실

청주 공장 직원 5명이 상주하는 실험실.
청주 공장 한편에 있는 취수정./ 청주=조인원 기자
"마시는 물 때문에 괴롭다"고 회사원 백종길(28)씨는 말했다. 1인 가구인 그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생수를 고르다 포기했다. 11만개가 넘는 상품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2L 한 병에 200원짜리는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고, 유명한 생수를 사자니 '물에 돈을 펑펑 쓰는 것 아닌가' 싶었다.

"매일 마시는 물이라 꼼꼼하게 따지는 편이에요. 생수는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요.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광고성 글들이라 헷갈립니다. 일단 편의점에서 낱개로 사고, 어떤 브랜드로 대량 주문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문자 그대로 '물장사' 전성시대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일반 생수 시장 규모는 1조3600억원에 달했다. 2014년(6040억원)에 비해 배 이상으로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지금 시중에 유통되는 생수 제품만 250여개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어떤 물이 좋은 물인지 따져볼 필요가 전혀 없다. '그 물이 그 물'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 우물에서 이름만 다른 26개 생수가 만들어진다. 또는 지역이 완전히 다른 11곳에서 퍼올린 생수를 같은 이름으로 판다. 유로모니터는 4년 안에 국내 생수 시장이 2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공장은 61곳, 종류는 250개

정모(41)씨는 생수를 고를 때 수원지(水源地)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전에는 유명 브랜드 생수를 믿고 마셨는데, 마실 때마다 다른 맛이 났다. 기분 탓인가 싶어 인터넷 쇼핑몰로 확인하니 이름만 같고 수원지는 달랐다. 경기도 가평, 경남 밀양 등 300㎞ 떨어진 지역에서 나온 물이 같은 이름('석수')으로 팔리고 있었다. 정씨는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생수 춘추전국시대'라는 말이 돈다. 시장 전망이 밝자 음료회사·제약사·제과회사 등이 뛰어드는 형국이다. 지금까지는 삼다수가 제주 한라산 암반수라고 홍보하며 먹는 샘물 시장 1위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몇 년 사이 다양한 생수 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올해 상반기 삼다수의 시장 점유율은 38%에 그쳤다. 2015년(45.7%)에 비하면 영토를 많이 빼앗겼다. 롯데 아이시스(13.6%)와 농심 백산수(8.7%)가 추격하는 가운데 최근 오리온, LG생활건강 등 식음료 업체뿐 아니라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유통업체도 PB(자사 브랜드) 생수를 출시했다.

우리나라 '우물'은 한정돼 있다. 커지는 시장 규모와 견주면 오히려 개수가 줄었다. 2013년 150여개였던 생수 브랜드는 올해 약 250개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공장 수는 66곳에서 61곳으로 감소했다. 대신 하루 취수 최대 허용량이 2013년 3만8364t에서 올해 4만7062t으로 증가했다. 같은 물을 길어 올리는데 담는 병만 다르다는 뜻이다.

지난달 충북 청주시 한 생수 공장. 이날 나오는 생수는 '아이시스 8.0'이었다. 컨베이어 벨트에 아이시스 행렬이 이어졌다. 1997년 문을 연 이 공장은 20년 사이 취수량이 370%나 증가했다. 지하 150m에서 암반수를 뽑아 일곱 단계 제균 필터를 거쳐 완제품을 만든다. 손훈락 공장장은 "생수 수요가 해마다 늘어 연휴 기간을 빼곤 공장을 하루 24시간 풀가동한다"고 말했다. 365일 밤낮없이 돌아가는 셈이다.

생수 시장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업체들은 이런 새 '우물'을 팔 필요가 없다. 생수는 경영학적으로 '경험 상품'으로 분류된다. 비슷한 맛을 가졌기 때문에 브랜드 인지도가 매출을 좌우한다. 생수 공장을 만들려면 최소 2000억원 이상이 든다. 반면 단위 생산 비용은 페트병과 뚜껑을 포함해 80원 남짓. 새로 뛰어드는 기업들은 기존 공장에 생산을 의뢰해 상표만 붙이는 방법을 택한다.

"수원지가 다른 물이 같은 이름표를 달고 팔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받은 '2019 먹는샘물 제조 업체 현황'에 따르면 '석수와퓨리스'가 판매하는 '석수'는 전국에 수원지 11곳을 두고 있다.

'석수' 맛을 수치로 산출했다. 생수 맛 차이는 '경도(硬度)'로 알 수 있다. 경도는 칼슘(Ca)에 2.5를 곱한 값과 마그네슘(Mg)에 4.1을 곱한 값을 더해 산출한다. 물에 녹아 있는 칼슘과 마그네슘이 많아질수록 경도가 높아진다. 그럴수록 묵직하고 낮으면 목넘김이 좋다. 약 50㎎/L 이상 차이라면 맛의 차를 느낄 수 있다.

각기 다른 공장에서 나온 '석수' 페트병에 쓰여 있는 성분 분석표에 따라 계산해보았다. 충북 청주 공장에서 생산한 생수의 최대 경도는 91.82㎎/L이지만, 세종 공장에서 뽑은 생수는 149.32㎎/L였다. 차이는 57.5㎎/L. 유의미한 수치다. '석수와퓨리스' 관계자는 "수원지 성분을 검토해 최대한 물맛을 비슷하게 유지한다"고 말했다.

'동원 샘물'과 '아이시스'도 수원지 11곳, 6곳을 각각 두고 있다. 두 브랜드 모두 공장의 최대 경도 차가 50㎎/L를 넘겼다. 신호상 공주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수원지가 5m 떨어져도 물의 성분이 달라서, 같은 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브랜드만 믿고 생수를 구매하면 아예 다른 물을 마실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실상 한 우물에서 나온 물을 다른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도 문제다. 김성욱(36·경기도 의정부시)씨는 지난달부터 생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유명 브랜드에서 저가 PB 제품으로 갈아타 한 달에 9000원을 아낀다. 먹는 물은 같다. 다른 제품인데 같은 수원지에서 나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김씨는 "수원지도 같고, 공장도 같다. 지금까지 같은 물을 더 비싸게 마셨다는 게 내 우울한 결론"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연천군의 한 공장은 26개 생수 제품을 생산한다. 같은 물을 같은 공정으로 퍼내지만 가격은 다르다. 이 공장 생수 중 롯데마트의 PB 제품 '바른샘물'은 2L 한 병에 약 308원, GS리테일의 'DMZ 맑은샘물'은 690원으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두 생수에 붙어 있는 성분 분석표로 산출한 최대 경도는 98.13㎎/L로 일치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비교적 비싼 가격에 대해 "24시간 편의점 특성상 가격은 조금 높을 수 있다"고 했다. 경기도 가평의 공장은 19개 종류를, 경남 산청군의 공장은 17개 종류를 생산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국내산 2L 생수를 망라해 최대 가격 차이는 890원(삼다수 1180원, 스파클 290원)으로 나타났다. 현재 가장 비싼 생수는 프랑스에서 수입하는 '에비앙'. 2L로 환산하면 3600원에 이른다.

지난달 7일 충북 청주의 생수 공장에서 '아이시스' 페트병이 나오고 있다(아래). 공장 실험실에서는 생수 샘플을 채취해(위) 성분을 확인하고 관리한다(가운데).
지난달 7일 충북 청주의 생수 공장에서 '아이시스' 페트병이 나오고 있다(아래). 공장 실험실에서는 생수 샘플을 채취해(위) 성분을 확인하고 관리한다(가운데). / 청주=조인원 기자
좋은 생수의 기준은?

우리 몸은 70%가 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에 물을 2L 마시라고 권장한다. 하지만 생수는 비싸다고 더 좋은 게 아니다. 미각이 예민하지 않다면 가장 싼 생수를 고르면 된다. 전문가들은 "시중에 나오는 물은 다 '좋은 생수'다. 선택은 맛에 따른 취향 차이"라고 입을 모았다. 건강에는 문제가 없으니, 소비자가 맞는 생수를 골라야 한다는 의미다.

생수 제조업체는 각 시도로부터 수질 등에 대해 지도와 점검을 해마다 2회 받는다. 지자체는 또 연 4회 시중에 유통되는 생수를 수거해 검사한다. 문제를 적발할 경우 취수 정지, 영업 정지, 과징금 부과 같은 행정처분을 내린다. 환경부 홈페이지에 접속해 '정보공개'〉'먹는물영업자 위반현황'에 들어가면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를 확인할 수 있다. '신세계푸드'는 생수 업체 '제이원'을 인수해 생수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2017년 제이원이 먹는물 관리법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으면서 사업을 접었다.

비싼 생수를 판매하는 업체 관계자들은 "자사 제품의 차별화 포인트는 품질"이라고 강조했다. 목넘김이 부드럽다거나 몸에 흡수되는 칼슘이 더 많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맛의 차이가 가격 격차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소비자에 따라 '선호하는 맛'이 있을 수 있지만 '좋은 맛'은 없기 때문이다. 신호상 공주대 교수는 "우리나라 수질 관리 기준은 해외보다 엄격하다. 시판 중인 생수는 기본적으로 높은 품질"이라며 "맛은 주관의 영역인데 어떻게 객관적인 가격에 반영하나?"라고 반문했다.

결국 가격 차이는 각 업체의 이름값이다. 고재윤 경희대 관광대학원 소믈리에학과 교수는 "브랜드를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인기 연예인을 섭외하며 광고비를 쏟아붓고, 비싼 가격을 매겨 그 비용을 메우는 구조"라고 했다.


미네랄 풍부한 프리미엄 생수? 아리수보다 미네랄 함량 낮아

멸치·시금치 등으로 섭취해도 충분

프리미엄 생수가 인기다. 국내 생수 시장이 커지며 일부 업체가 선택한 차별화 전략이다. 프리미엄 생수들은 저마다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홍보한다. 미네랄은 칼슘, 마그네슘, 나트륨 같은 영양소. 신체에 꼭 필요하지만,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그러나 프리미엄 생수라는 말 자체가 '장삿속'이다.

전문가들은 프리미엄 생수와 일반 생수 사이에 미네랄이 차이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한 프리미엄 생수에 함유된 칼슘과 마그네슘은 7.6~11.3㎎/L, 0.08~0.12㎎/L. 오히려 일반 생수인 '아이시스'에 비해 각각 3㎎/L 정도 낮았다. 심지어 수돗물보다도 낮았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실험 결과 '아리수'(서울 수돗물) 속 칼슘은 15.3㎎/L, 마그네슘은 2.8㎎/L였다. 천연수라고 해서 미네랄이 더 풍부하진 않다는 게 중론이다.

미네랄을 꼭 물로 섭취해야 하는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식품으로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 생수에 녹아 있는 칼슘은 15~30㎎/L, 마그네슘은 5~6.5㎎/L 정도. 멸치 1g에 든 칼슘이 19.05㎎이다. 시금치 70g을 먹으면 마그네슘 55.3㎎을 섭취할 수 있다. 성인 하루 물 섭취 권장량은 2L로, 그 이상 마시게 되면 오히려 해롭다. 물 6~7컵 마시는 대신 멸치 한 마리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편이 나은 셈이다.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 때 즐겨 마신 '스마트 워터'(오른쪽)는 생수가 아닌 증류수다.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 때 즐겨 마신 '스마트 워터'(오른쪽)는 생수가 아닌 증류수다. / CBS NEWS 사이트 캡처
미국 시장에서는 미네랄 워터를 고집하지 않는다. 끓인 증류수를 식수로 판매하는 마트가 많다. 가열 과정에서 미네랄은 사라지지만, 위생은 가장 확실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 때 마시던 '스마트 워터(Smart Water)'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증류수는 '혼합 음료'로 분류돼 생수로 취급하지 않는다. 한동안 '속지 않는 법'이라며 성분 분석표에 '혼합 음료' 대신 '먹는 샘물'이라고 쓰여 있는 생수를 구매하라는 팁이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기도 했다.

이태관 계명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프리미엄 생수는 대부분 깊은 자연에서 길어 올렸다고 홍보하지만 일반 생수와 큰 차이가 없다"며 "미국은 증류수만 마시는 가정집도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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