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감정 확산에 잠시 주춤했던 일식 경기전망지수, 4분기 반등할 듯
'대접받는 느낌' '익숙한 감칠맛'에 꾸준히 인기

25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뒤편 골목으로 약 300m를 걸어 들어가니 간판 없이 통유리로 된 아기자기한 식당이 나왔다. 입구 왼편으로 ‘정성스런 가정식 맛집, 시카노이에’라 써 있는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30㎡(약 9평) 남짓한 공간에 2인용 테이블 6개, 오른쪽 창가로 6명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바(bar), 일본식 오픈 주방, 아기자기한 소품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카노이에 대표 메뉴인 명란 새우 오므라이스(사진 오른쪽)와 아보카도 명란마요밥 정식.

시카노이에 대표 메뉴인 ‘명란 새우 오므라이스’와 ‘아보카도 명란마요밥 정식’을 주문하자 예쁜 플레이팅, 형형색색 신선해 보이는 음식이 한상 나왔다. 진한 미소시루(된장국)와 연어 회 두 점, 날치알이 올라간 달걀찜으로 일식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태백에서 직접 공수했다는 김치, 재료를 아끼지 않은 장조림으로 한국인의 취향도 생각했다.

시카노이에는 직장인들이 점심 먹으러 나오는 11시 50분부터 12시 20분까지는 줄을 서야 들어올 수 있는 ‘광화문 대표 맛집’으로 꼽힌다. 근처 회사에 근무한다는 김모씨는 "맛도 좋지만, 정갈하고 예쁘고 나오는 음식 때문에 ‘보는 재미’도 있어서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일본 수출규제 이후 일본산 맥주가 한국 실적 제로(10월, 일본 재무성 집계)에 그칠 정도로 불매운동 직격탄을 맞고 있는 가운데 일본 음식점들은 여전히 성황을 이루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최근 발표한 ‘올해 3분기 외식산업경기전망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식·중식을 압도하던 일식 업종의 경기전망지수는 일본 수출규제 이후 잠시 주춤하는 듯 싶더니 4분기 69.64로 다시 반등할 것으로 점쳐진다. 외식업 경기전망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최근 3개월간(현재) 및 향후 3개월간(미래) 외식업계의 매출과 체감 전망을 외식업체 경영주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수화한 것이다. 또 타격을 받았다고 해석되는 올해 3분기(66.75) 지수조차도 전분기 대비해서 떨어졌을 뿐, 지난해 3분기(66.63)와 비교하면 되레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이민경

일식은 가격대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메뉴당 1만5000원 수준이어서 한 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시카노이에뿐 아니라 ‘스시인(서울 신사동 소재)’ 같은 최고급 스시집도 지금 예약해야 3개월 뒤에 찾을 수 있을 만큼 성황이다. 이곳은 요리사가 알아서 최고의 재료로 요리해주는 오마카세 저녁 메뉴 가격이 20만원을 웃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일식에 열광하는 걸까. 일식 중에서는 유일하게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 별 2개를 받은 고급 레스토랑 ‘코지마(서울 청담동)’ 유성엽 셰프를 만나 그 비결을 물어봤다. 유 셰프는 ‘가이세키(다양한 음식이 작은 그릇에 순차적으로 나오는 일본식 코스요리)’ 장인 무라타 요시히로(村田吉弘) 수제자로 그가 운영하는 일본 기쿠노이(미쉐린 가이드 별 3개) 교토 본점에서 6년간 근무했었다.

◇ 어디서 먹어본 듯한 ‘감칠맛’

"탄수화물과 지방(기름)의 조합은 ‘맛의 공식’과도 같죠. 한국인들이 일식 중에서도 특히나 좋아하는 스시는 밥과 생선으로 만드니 맛있을 수밖에 없어요. 특히나 스시는 만드는 데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도,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지도 않아요. 신선한 재료, 스킬만 있으면 됩니다."

유 셰프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식 메뉴 중 하나인 스시 인기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에 식판 하나에 일인분씩 내는 서빙 방식이 최근 젊은이들의 음식 소비 문화와도 잘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희경 조선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식생활문화학회에 낸 논문에서 "맛과 동시에 건강을 생각하는 음식, 소식(小食)으로 음식문화가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며 "일식은 이런 최근 움직임에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일본 요리가 육수로 베이스를 낸다는 것도 한국인들이 일식을 맛있고 친숙하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유 셰프는 "밀가루, 버터, 기름 등 나라마다 주로 쓰는 베이스가 있는데 일본은 우리처럼 육수로 감칠맛(우마미)을 내기 때문에 이질감을 별로 못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1971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에 ‘백화점 식당 1호’를 낸 경양식 레스토랑 ‘까사빠보’도 이런 감칠맛 덕분에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까사빠보 관계자는 "당시 한식도 팔고 양식도 팔고 중식도 팔았는데, 조리법은 일본식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식당은 백화점 자체 브랜드로 ‘일본 경양식’을 내세우고 있다.

1971년 백화점 식당1호로 문을 열었던 까사빠보의 당시 모습.

◇ ‘대접받는 듯’한 이 분위기 뭐지?

서울 목동 주택가 후미진 골목에 자리잡은 ‘스시 오오시마’는 한 번에 6명만 앉을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지만 오픈식 주방으로 돼 있어 인기가 좋다. 셰프가 눈앞에서 직접 재료를 다듬고 요리해 주면서 한 사람, 한 사람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네이버를 통해 받은 12월치 예약 접수는 오전 10시에 오픈하자마자 1분 만에 마감됐다.

유성엽 셰프는 "협소한 공간에서 셰프와 손님이 소통하는 ‘오픈 다이닝’은 미각을 극대화하는 요소 중 하나"라면서 "손님이 어떤 속도로 먹는지, 입을 크게 벌려 먹을 수 있는 자리인지, 기분은 어떤지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셰프는 그에 맞는 크기·속도로 음식을 내놓기 때문에 먹는 입장에서는 대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청담동 '스시 코우지'를 운영하는 일본인 요리사 코우지 나카무라씨가 스시를 만들어 손님에게 내주고 있다. 이 같은 식당 특유의 분위기가 맛을 배가시킨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