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쌓은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두바이 왕자도 반한 균형의 예술가

조선일보
입력 2019.11.30 03:00

[아무튼, 주말- 밸런싱 아티스트 변남석]

‘밸런싱 아티스트’ 변남석씨가 순식간에 빈 병 여섯 개의 중심을 잡더니 공중에 붕 뜬 것처럼 쌓아 올렸다. 변씨는 “할 수 있다는 확신만 가지면 누구나 무엇이든 세울 수 있다”고 했다.
‘밸런싱 아티스트’ 변남석씨가 순식간에 빈 병 여섯 개의 중심을 잡더니 공중에 붕 뜬 것처럼 쌓아 올렸다. 변씨는 “할 수 있다는 확신만 가지면 누구나 무엇이든 세울 수 있다”고 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세상 살면서 균형 잡기가 가장 어렵다'고 흔히 말한다. 그 어려운 걸 예술로까지 승화시킨 이가 있다. 작은 돌멩이부터 노트북, 볼링공, 가야금 심지어 오토바이, 냉장고, 에어컨처럼 크고 무거운 물체까지 균형을 잡아 모서리나 귀퉁이로 세운다. 작은 돌멩이 위에 볼링공처럼 표면이 둥글고 미끄러운 물체를 쌓아 올리는가 하면, 벽돌에 오토바이를 올려 세우고 어린아이까지 태운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물체와 물체가 맞닿은 부분에 접착제가 발라져 있는지 의심하며 만져보기까지 한다. CNN, BBC, 폭스TV, NBC, 디스커버리 채널, 후지TV 등 세계 주요 매체가 '균형의 마에스트로' '무엇이든 균형 잡아 세우는 남자' 등으로 소개한 이의 이름은 변남석(57). 해외에서 '로키 변(Rocky Byun)'으로 통하는 그는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자신이 창시한 '밸런싱 아트(Balancing Art)'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자신을 '밸런싱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는 변씨는 "무엇이건 무게와 부피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감만 가진다면 균형 잡고 세우고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가능하단 게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긍정이 없어서 못 하는 거다. 다들 처음엔 그런다. 초등학교에 강연하러 가서 1~6학년 아이들에게 달걀을 주고 세워보라고 했다. 애들이 '선생님은 능력자니까 할 수 있고 우리는 일반인이라 못 해요'라더라. 그런데 잠시 후 1학년짜리가 세웠다. 그러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할 수 없어' 지레짐작하고 건성건성 하던 고학년들도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애가 하니까 '나도 할 수 있다'가 된 거다. 결국 모든 아이가 달걀을 세웠다.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세운다."

―원리나 비결, 요령이 있나.

변남석씨가 ‘두바이 몰’에서 밸런싱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 화면
변남석씨가 ‘두바이 몰’에서 밸런싱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 유튜브 화면
"밸런싱 아트는 과학이다. 초능력이나 마술이 아니다. 중력을 이용한다. 모든 물체에는 무게중심이 있다. 이 중심이 수직으로 만나 정확하게 일치하면 무너지지 않고 서게 된다. 무게중심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바로 무너진다. 부피와 무게만 있으면 뭐든 세울 수 있다. 단 (물처럼) 형태가 바뀌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라도 마찰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어쩌다 하게 됐나.

"2003년 여름 북한강에 웨이크보드를 타러 갔다가 혼자 춘천에 있는 등선폭포에 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폭포 주변에 돌멩이가 지천이더라. 심심풀이로 기다란 돌 하나를 세우고 그 위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 얹었다. 카메라에 담아 집에 왔는데, 저녁에 사진을 보니 놀랍게도 한 여인이 석양을 등진 채 다소곳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심코 얹은 돌 두 개가 완벽한 여인의 형상을 자아낸 거다."

이 '여인' 때문에 그는 잠을 못 잤다. 밤사이 바람에 쓰러지지 않을까, 폭우에 휩쓸리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날이 새자마자 폭포로 달려갔고, '여인'이 무사한 걸 보고서야 안도했다. 이후 변씨는 균형 잡기에 빠졌다. 돌을 쌓고 또 쌓는 연습을 했다. 하루는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인천 을왕리 바닷가에 갔다가 한적한 바닷가에서 돌밭을 찾았다. 이날부터 이 돌밭은 그의 작업장이 됐다. 하루가 멀다고 찾아가 돌을 세우고 쌓았다. 그가 사는 경기도 분당 탄천 징검다리 앞에도 작업 공간을 마련했다. 변씨의 돌탑은 연인의 약속 장소, 걷거나 달리는 이들의 반환점이 돼 가며 탄천의 명물이 됐다.

―어떻게 알려지게 됐나.

"블로그에 작품 사진을 올렸는데 방송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못 할 것도 없다' 싶어 출연했다. 시청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러고는 방송에 줄줄이 출연하게 됐다."

―국내 방송은 '스타킹' '생활의 달인' 등 기인(奇人)을 주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아티스트'로 소개되고 있다.

"인식이 바뀌었다. 예술, 예술가로 인정해준다. 요즘은 기인으로 소개하려는 프로는 안 나간다."

―가족이 초반에는 "뭐 하는 짓이냐"며 반기지 않았다던데.

"지금도 좋아하진 않는다. '왜 하냐'고 한다."

유명해지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서울시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다. 북촌 찻집에서 찻잔 위에 주전자를 주둥이로 세우고, 남산 한옥마을에서 가야금을 통나무 위에 세우고, 찜질방에서 구운 달걀 위에 항아리를 세웠다. 두바이 왕자에게 초청받아 세계 최대 쇼핑몰 '두바이 몰'에서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그를 초청한 왕자는 셰이크 함단 빈 무함마드 알 막툼(37·이하 함단). 두바이 왕세자인 함단은 순자산만 200억달러(약 23조원)인 세계적 갑부에 790만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거느린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스타로, 국내에서는 준수한 외모 때문에 '두바이 장동건'으로도 유명하다.

―두바이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

"2012년 두바이에서 영어 이메일이 한 통 왔다. 스팸 메일인 줄 알고 지워버렸다. 그런데 같은 내용이 트위터로도, 페이스북으로도 왔다. 그제야 내용을 들여다보니 '두바이 왕자가 당신을 초청하고 싶다'는 거였다. '비즈니스가 아니면(돈을 받지 않고는) 갈 수 없다'고 답했더니 한동안 답이 없었다. 잊고 있었는데 두바이에서 우편물 하나가 왔다. 인천-두바이 왕복 비즈니스석 항공권과 5성급 호텔 스위트룸 숙박권이 2장씩 들어 있었다. '아랍어와 한국어가 가능한 통역사와 함께 오라'는 메모도 있었다."

왕자의 측근은 "쇼핑몰을 다니며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해 해보라"고 했다. 두바이 쇼핑몰을 돌아보니 한국산 냉장고, 세탁기, 노트북 등 가전제품이 많았다. 이왕이면 한국 제품으로 하자 싶어 그것들을 골랐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선택했다. 그가 12개 작품을 완성하자 인파가 몰려들었다. 세계 최대 규모 음악 분수 쇼가 옆에서 펼쳐져도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그의 퍼포먼스를 봤다. "일주일 동안 일정을 마치자 왕자의 측근이 개런티라며 1만달러(당시 약 1300만원)가 든 봉투를 주었어요. 제 작업의 가치를 확인하게 됐죠."

―요즘도 초청이 들어오나.

"싱가포르 마리나베이를 소유한 기업에서 '싱가포르에 와서 마리나베이 형태의 중심 잡기를 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가 들어왔다. 광고 섭외도 많다. 2014년 메리어트호텔 광고를 찍었다. '복잡하고 힘들고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 우리 호텔로 와라. 메리어트는 시설과 시스템, 직원이 중심을 잘 잡고 있어서 완전한 충전과 휴식이 가능하다'는 개념으로 광고를 만들고 싶단 거였다. 세상 모든 일, 모든 곳에 다 중심이란 주제가 있다."

―밸런싱 아트만으로 생계와 가족 부양이 가능한가. 수입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밝힐 수 있을까. 과거 스포츠센터를 운영할 때와 비교하면.

"스포츠센터 할 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그때는 매일 일해야 했다.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때만 한다. 놀면서 돈 버는 느낌이다."

―밸런싱 아트를 통해 터득한 인생의 깨달음 같은 게 있나.

"물체의 중심을 잡기 전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뭔가를 표현하려면 몰입해야 한다. 딴생각하면 못 세운다. 내 마음에 중심이 잡히지 않으면 물체를 쌓지도 세우지도 못한다. 마음의 중심이 행위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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