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진중권은 왜 페이스북을 닫았나

조선일보
입력 2019.11.23 03:14

조국·탁현민 비판해 배신자 된 좌파 진영의 양심적 지식인들
좀비 닮은 지지층 청산 여부가 문재인 정권의 운명 가를 것

김윤덕 문화부장
김윤덕 문화부장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별명은 '모두까기 인형'이다. 좌파 학자지만 좌파 진영도 거침없이 비판해서다. 최근에도 조국 가족의 표창장 위조 진상을 폭로해 악플 테러를 당했다. 정도가 심했는지 페이스북을 닫으며 심경을 토로했다. "누가 좌표를 찍었는지 저 극성스러운 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단체로 행패를 부린다. 저 뇌 없는 무리들의 아우성이 피곤할 뿐이다."

2년 전 같은 이유로 여성학자 정희진도 절필을 선언했었다. 진중권이 "뇌(腦) 없는 무리"라 표현한 것을, 정희진은 "문해력 없는 좀비들"이라고 썼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과 싸우면 백전백패"라고 개탄했다.

정희진은 여성학계 스타 학자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밀리언셀러로 만든 2030 페미니스트들의 대모다. 그의 저서 '페미니즘의 도전'은 차별을 모르고 자란 알파걸들로 하여금 왜 여전히 여성은 밤길을 두려워해야 하고, 왜 여전히 가사와 육아를 책임져야 하며, 사회는 왜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일깨우며 영페미들의 고전이 됐다. 정희진 책을 읽고 페미니스트가 된 남자도 여럿이다. 기생충 학자 서민도 그중 하나다.

'꼴페미' '페미×'처럼 페미니스트라면 혐오 일순위로 등극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희진은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며 여성주의적 글쓰기의 새 지평을 열었다. 다독가에 지독한 영화광이기도 한 그는 성폭력 피해자·가해자의 상담가로 활동하며 쌓은 현장 경험, 인문학적 통찰로 독자층을 넓혔다. 성차별이라는 불편하고 거북한 주제를 유머와 냉소를 버무린 글솜씨로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좌파 진영에도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리버럴 마초들을 특히 경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더러운 잠'이란 제목의 나체 합성화로 희롱한 사건, '세월호 7시간'을 빌미로 여성 대통령에게 몰아친 집단적 광기에 좌파는 물론 여성 단체들이 침묵할 때 그는 홀로 "비상시국 때마다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전형"이라 일갈했다.

문제는 탁현민이었다. '남자마음설명서'란 책에 "다소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여라, 젖무덤이 살짝 보이는 정도라면 남자는 순간 숨이 막힌다"고 쓴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향해 "당신이 백인의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듯이, 여성의 몸도 남성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탁현민을 옹호하고 나선 문성근에게는 "문재인 정부의 돼지 흥분제"라 질타했고, "이 상식 이하의 인권 의식을 가진 남성들이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했다.

좀비들이 가만둘 리 없다. 좌표로 찍고 '자유한국당 프락치'로 몰아갔다. 칼럼을 중단했다. 그는 "나는 나의 존엄을 위해 자살해야 했다"고 썼다.

진중권과 정희진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학자다. 좀비들 위협에도 충언을 멈추지 않은 이유다. 얼마 전 팬미팅을 방불케 한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보면서 정희진이 남긴 고언을 떠올렸다. "팬심과 정치적 지지는 다르다. 지나친 염원과 비판 세력에 대한 적대감이 사랑의 엔진이 되면, 그들이 사랑하는 정치인의 지지 기반을 오히려 흔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무뇌아들의 총공세 후 진중권은 한 인터뷰에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은 다 깨졌고, 이제는 나 하나 변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그리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권이 '조국기부대'를 청산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낙인찍기가 주특기인 참모들, 뉴스 공작과 촐싹 궤변을 일삼는 인사들, 불의를 정의라 강변하는 지상파 미디어 프로에 둘러싸여 벼랑 끝을 향해 걷고 있는 현 정권이 무섭게 받아들여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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