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포항 추젓, 태안 물메기탕, 목포 산낙지… 찬바람 불면 입맛 돋우는 제철 해산물

입력 2019.11.23 03:00

[아무튼, 주말]
강화서 목포까지 서해안 해산물 로드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항과 남면 드르니항을 잇는 해상 인도교 ‘대하랑 꽃게랑 다리’.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항과 남면 드르니항을 잇는 해상 인도교 ‘대하랑 꽃게랑 다리’.
갑자기 추워진 날씨. 움츠러드는 몸과 함께 마음도 '비수기'다. 겨울의 문턱에서 생동(生動)하는 바다로 떠났다. 차디찬 바다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꿈틀대는 해산물을 맛보고 올 한 해 수고했다는 듯 마음을 다독여주는 낙조도 만났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온몸을 비릿한 바다 냄새로 가득 채우는 서해 해산물 로드!

강화 외포항선 '추젓' 사고 밴댕이회 맛보고

경기도 대부도 ‘24년 차’ 조개구이 포장마차로 유명한 ‘동환네조개구이’.
경기도 대부도 ‘24년 차’ 조개구이 포장마차로 유명한 ‘동환네조개구이’.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젓갈 한번 잘못 쓰면 김장을 망칠 때도 있다니까!" "난 작년에 누가 보내준 새우젓 김장할 때 넣었더니 금세 군내가 나 못 먹었어." 지난 12일 외포항젓갈수산시장재형호) 매장 앞. 40~50대 주부들이 이쑤시개로 김장용 새우젓을 시식하며 '김장 괴담'을 늘어놓는다. 주인이 팔딱팔딱 뛰는 생 젓새우(중하새우)를 들어 보이며 "강화에선 이 생 젓새우를 갈아서 김장에 넣어 먹는데 달큰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낸다"고 설명하니 일동 고개를 끄덕끄덕. 새우 숨이 죽기도 전에 절반 이상이 팔려나갔다.

전남 신안 등지서 잡은 산낙지는 펄 색이 진하다.
전남 신안 등지서 잡은 산낙지는 펄 색이 진하다. / 박근희 기자
5월에 나는 젓새우로 담은 '오젓', 6월에 나는 젓새우로 담은 '육젓'도 있지만 '강화' 하면 역시 가을에 잡힌 젓새우로 만든 '추(秋)젓'이다. 전국 추젓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지역답게 김장철이면 외포항젓갈수산시장의 왕좌는 추젓이 차지한다. 강화 추젓은 적당히 짠맛에 씹을수록 달고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외포항젓갈수산시장에선 강화 추젓을 '연차(年次)'에 따라 만나볼 수 있다. 숙성 기간에 따라 때깔이 다르다. 살색의 주홍빛을 띠는 건 1년 숙성시킨 것. 1kg에 1만5000원 선이다. 탁한 색을 띨수록 연차가 높다. 외포항 젓갈수산시장 어느 매장에서나 젓새우와 비슷하게 생긴 곤쟁이젓이나 반찬용 밴댕이젓, 굴젓 등 다양한 젓갈을 시식 후 살 수 있다.

입이 심심하다면 밴댕이회를 맛보자. 비교적 착한 몸값(1접시 1만원)에 밴댕이회를 먹을 수 있다. 5~6월이 제철이라고 알려진 밴댕이는 성질이 급해 바다에서 잡히자마자 죽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얗던 살이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맛이 떨어진다. 춥긴 해도 젓갈 시장에서 사 시장 바로 뒤편 바다 전망 간이 테이블에 앉아 석모도를 바라보며 맛보는 게 가장 부담 없이, 간편하게 맛보는 방법이다. '밴댕이 소갈딱지'란 불명예와 달리 속살은 부드럽고 씹을수록 고소하기만 하다.

서해 식당마다 조개 제철 시작

강화서 목포까지 서해안 해산물 로드
1 외포항: 추젓·밴댕이회 등(강화도 내가면 외포리) 2 인천종합어시장: 수산물 종합 (인천 중구 항동7가) 3 대부도: 조개류·낙지 등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4 궁평항: 조개류·낙지 등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5 궁리포구: 조개류 등 (충남 홍성군 서부면) 6 백사장항: 꽃게·물메기 등 (충남 태안군 안면읍 ) 7 오천항: 키조개·주꾸미 등 (충남 보령시 오천면) 8 대천항: 대구·갑오징어 등 (충남 보령시 신흑동) 9 군산항: 물메기·박대 등 (전북 군산시 소룡동) 10 목포항: 산낙지·먹갈치 등 (전남 목포시 항동)
가을의 터널을 빠져나와 겨울에 들어선 서해는 가을 어종과 겨울 어종이 교차하는 어항이 된다. '혼돈의 바다'다. 쉽게 말해 끝물인 가을 해산물도, 이제 막 맛이 들기 시작한 겨울 해산물도 모두 맛볼 수 있는 교집합 상태가 된단 얘기. 김맹진(43)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연구사는 "그래도 이맘때 서해에 간다면 꼼치(지역에 따라 곰치·물메기), 대구(大口), 농어, 방어, 갑오징어를 놓치지 말라"고 귀띔했다. 곧 산란을 시작하는 꼼치가 맛있어지는 계절이다. 어획량이 늘어난 대구도 맛볼 거리다. 농어는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접근하는 중. 김 연구사는 "일반적으로 봄에 산란하는 어종이 겨울에 가장 맛있다는 게 힌트"라고 했다.

조개는 수온이 내려간 바닷물을 머금으며 한결 살이 쫄깃, 탱탱해진다. 서해 바닷가에선 '조개 파티'가 시작됐다. 바닷가 주변 식당과 해물 포차들은 이맘때부터 주종목이 대하나 꽃게에서 조개 구이·찜·탕으로 바뀐다. 수산시장마다 '모둠 조개'란 명찰을 달고 한 소쿠리에 각종 조개를 수북이 담아 1만~2만원에 팔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12월에 들어서면 여기에 꼬막, 굴이 추가된다.

예민한 입맛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조개구이는 어디서 먹든 대개 비슷하다. 조개 양과 신선도, 서비스, 분위기가 맛집 선택의 기준이 된다. 조개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제철 해물 포차(포장마차) 동환네조개구이는 요즘 조개구이를 먹으려는 단골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중. 한때 30여 개에 달하던 대부도 '대선방조제 포차 거리'가 사라지면서 인근 선착장으로 자리를 옮겨 유일하게 24년째 영업하는 곳이다. 메뉴에 쓰이는 해산물 중 상당수를 대부도 어민들이 수확한 것을 쓴다. 그날그날 어민들의 수확물에 따라 조개 종류는 조금씩 변경된다. 조개구이를 주문하면 주인 부부가 동죽조개, 소라, 바지락, 맛조개, 가리비, 굴 등 조개를 푸짐하게 올려준다. 키조개와 대합 양념에 라면 사리를 추가해 '조개 라볶이' 만들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해안선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수산물직판장에선 싱싱한 생물 조개를 비롯해 각종 해산물을 살 수 있다. 제부도에서 차로 20분 거리여서 드라이브 겸 제부도 섬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수산물직판장 주변에 음식점이 많지 않다. 건물 바로 옆 양념코너(양념집)에서 상차림 비용을 내면 산 해산물을 손질해 곁반찬과 함께 내준다. 취향에 따라 구워 먹거나 '샤부샤부'처럼 국물 요리를 해먹을 수 있다. 단, 구이·샤부샤부 차림 비용 1만원 별도.

천수만의 첫번째 항인 궁리항과 가까운 일몰 명소 궁리포구에선 이달 30일부터 12월 13일까지 2주간 '제2회 궁리포구 굴·수산물 축제'를 연다. 지기옹(58) 궁리어촌계장은 "휴어기(休漁期) 때 어촌계 활성화를 위해 마련한 소박한 행사로 비닐하우스(5×7m) 8동을 설치해 어민들이 직접 양식하거나 채취한 굴, 소라, 주꾸미 등을 1인 1만원 선의 부담 없는 가격에 실컷 구워 먹을 수 있도록 꾸밀 예정"이라고 했다.

태안·대천선 '물메기탕' 한 그릇

전남 목포항에 가면 산낙지가 발목을 잡는다. 목포수협활어위판장 내 ‘가영수산’ 주인이 싱싱한 산낙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전남 목포항에 가면 산낙지가 발목을 잡는다. 목포수협활어위판장 내 ‘가영수산’ 주인이 싱싱한 산낙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 박근희 기자
전북 군산항 군산수산물종합센터 건어물 판매장 건조대에서 박대가 맛있게 말라가고 있다.
전북 군산항 군산수산물종합센터 건어물 판매장 건조대에서 박대가 맛있게 말라가고 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꽃게 산지인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항과 남면 드르니항을 잇는 250m 길이의 해상 인도교 '대하랑 꽃게랑 다리'는 겨울밤 야경, 일출과 낙조 감상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일부 수족관을 비운 곳도 눈에 띈다. 성수기에 비해 다소 썰렁한 풍경이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한 '백사장항어촌계 수산시장'을 비롯해 '백사장수산물회센터' 등 40여 곳에서 크고 작은 수족관을 갖추고 싱싱한 해산물을 판매한다.

'태안' 하면 김치와 꽃게를 넣고 끓인 게국지나 건조한 우럭을 쌀뜨물에 뽀얗게 끓여낸 '우럭젓국'(우럭간국)이 유명하다. 이 시기만큼은 물메기탕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전윤수 안면도수협 백사장항지소 대리는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태안 사람들은 물메기탕을 별미로 먹는다"고 했다. 흔히 '곰치(꼼치)국'으로 불리는 물메기탕을 두고 서해 등 일부 지역 사람들은 '물텀벙이탕'이라고도 한다. 10년 전만 해도 그물에 걸려들면 '못생겨서' 바다에 바로 버렸다던 머리 큰 생선이다. 그때 머리 무게 때문에 '텀벙' 소리가 난다고 해 어부들 사이에서 물메기는 '물텀벙이'로 불렸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 대천항에선 '물잠뱅이'라 부르기도 한다. 불리는 이름은 다양하지만, 비린내와 기름기가 없어 시원한 국물 맛을 내는 데는 그만이다. 여느 때는 살이 흐물흐물하게 부서지는데 겨울엔 부드럽게 씹힌다. 지역 주민들이 애용하는 태안상설시장 인근 서해회수산에서는 김칫국·지리 물메기탕(3~5인분 4만~6만원) 두 버전으로 맛볼 수 있다. 지난 가을 대하, 꽃게철을 놓쳤다고 아쉬워하지 마시라. 만세튀김) 등 백사장항 튀김 가게에선 대하, 꽃게 튀김을 연중 맛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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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강화도 ‘추젓’을 판매하는 외포항젓갈수산시장. ② 강화도 외포항젓갈수산시장에서 1만원에 파는 밴댕이회. ③ 충남 태안군 백사장항의 대하·꽃게튀김 맛집 ‘만세튀김’. ④ 전남 목포항에 있는 해양수산복합센터.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박근희 기자
낚싯배 타고 광어·주꾸미 사냥, 오천항

지금 충남 보령시 오천항을 찾는다면 이유는 키조개를 맛보고 싶거나 낚싯배 체험을 하고 싶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서해의 작은 항인 오천항은 키조개 산지로 이름나 있다. 금어기인 7~8월을 제외하고 사시사철 잠수부들이 채취한 싱싱한 키조개를 먹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요즘은 낚싯배 체험 명소로 뜨고 있다. 새벽 동트기 전 항에 정박한 나폴리호, 블루피싱, 스피드피싱, 프랜드피싱 등 낚싯배들이 일제히 출항을 위해 불을 밝힌다. 오천항 나폴리호 선주 원종홍(51)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중장년층이 주를 이뤘는데 낚시 영상이나 TV 프로그램 등이 늘면서 올해는 20~30대 젊은 층이 급격히 늘어났다"고 했다. 낚싯배 1인 체험비는 광어·우럭 낚시의 경우 10시간에 10만원, 주꾸미 낚시의 경우 8시간에 8만원이다. 원씨는 "지금은 광어, 우럭, 주꾸미가 주로 잡히고 갑오징어는 끝물이긴 하지만 12월 첫째 주까지는 나올 것 같다"며 "초보라도 대체로 주꾸미 100~150마리, 광어 3~5마리는 잡아가더라"라고 했다.

군산에선 '박대' 목포에선 '산낙지'

경북 포항 구룡포에 과메기가 있다면 서쪽 편 전북 군산엔 박대가 있다.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가 제철인 박대는 군산시 금동 군산수산물종합센터에 가면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건어물동 뒤편 바닷가 건조망엔 박대가 열을 맞춰 해풍에 반건조 중. 건조대는 이 시기 박대 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박대가 장악했다. 상인들은 해가 좋을 때 박대를 널어 말리고, 해가 지면 다시 거둬들이기를 반복한다. 박대는 몸통이 가자미보다 얇고 가늘며 좀 더 길다. 눈과 입은 깨알을 붙여 놓은 것처럼 생겼다. 박대란 이름은 '못생겨서 박대(薄待)받아 박대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說)도 있지만 '몸통이 얇아 얇을 '박(薄)' 자를 써서 박대라 불린다'는 게 정설이다. 군산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박대는 흔하디흔한 생선이었다. 중장년층 사이에선 삼시세끼 박대를 먹었다는 증언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지금은 반건조 가공해 판매하면서 전국적으로 환대(歡待)받는 생선이 됐다. 박대를 맛보고 싶다면 수산센터 부근 생선요리 전문점에서 시식해볼 것. 생선구이 정식을 주문하면 노릇노릇하게 구운 박대가 나온다. 주인에게 듣는 박대 이야기는 덤이다.

서해안 해산물 로드의 종착지는 서해와 남해 어장이 교차하는 전남 목포시 목포항이다. 펄떡거리는 활어 등 바다에서 갓 잡은 생물은 목포시 산정동 목포북항 '목포수협활어위판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위판장을 기준으로 주변 회센터에선 수족관마다 산낙지가 발목을 잡는다. 신안 앞바다, 진도 등에서 잡아 올린 산낙지는 펄 색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식감도 드세지 않고 연하다.

위판장 안 가영수산을 비롯해 7곳의 직판장에선 낙지를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크기별로 한 마리 4000원부터 1만5000원까지. 싱싱한 상태로 가져갈 수 있도록 산소를 주입해주는 '산소 포장'도 가능하다. 위판장 내 판매장은 경매가 시작되는 오전 7시쯤 문 열어 오후 6시까지 영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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