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뉴턴과 케인스, 그리고 인터스텔라

조선일보
  •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공학박사
입력 2019.11.22 03:13

최근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호 인터스텔라 진입은
학계 상식 뒤집고 우주 비밀 푼 뉴턴 만유인력 덕택

恐慌 설명 위해 뉴턴의 流動性 개념 차용한 케인스
가격 내려도 소비 안 느는 현상, '유동성 함정' 命名

물리학에 기반해 자본주의 구원한 케인스 경제학은
오늘날 '자유시장 對 정부개입' 슬기로운 보완 주문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공학박사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공학박사
최근 태양계를 벗어나 인터스텔라, 즉 성간우주로 진입한 보이저호 소식에 과학계는 열광했다. 42년째 항해 중인 이 우주선에는 우리 문명을 담은 황금 디스크가 실려 있고, 뉴턴의 저서 '프린키피아'도 포함돼 있다. 만유인력이라는 우주의 비밀을 알려준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단순한 과학책을 넘어 인류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지적 산물이다. 그 영향권엔 20세기 최고 경제학자인 케인스도 들어 있다.

1942년 런던왕립학회는 뉴턴 탄생 3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케인스에게 뉴턴에 대한 특별 강연을 요청한다. 그는 이미 22세에 프린키피아를 찾아 서점가를 헤매던 뉴턴광이었고, 평생 방대한 뉴턴 저작물을 수집한 당대 최고 뉴턴 전문가였다. 하지만 행사는 2차 대전 때문에 4년 후로 연기되었고, 이때는 케인스가 이미 사망한 뒤였다. 다행히 강연 원고가 남아 '인간 뉴턴(Newton, the Ma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는데, 여기서 케인스는 뉴턴을 '마지막 마술사'라고 불렀다. 대공황으로 벼랑 끝에 몰린 자본주의와 경제학을 구원하고 이후 현대 경제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케인스, 그보다 300년 앞서 우주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밝힌 뉴턴.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두 천재는 어떤 인연의 끈으로 연결돼 있는 것일까.

300년을 뛰어넘은 뉴턴과 케인스의 인연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를 거치며 지동설은 부인할 수 없는 상식이 되었고, 뉴턴 시대의 최대 관심사는 '대체 무엇이 지구를 움직이는가'였다. 당시 과학자들은 물체를 움직이는 힘은 반드시 직접적인 접촉이나 충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과학은 미신이나 신비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염력이나 주술같이 원격으로 작용하는 힘을 거부했다. 과학자들은 우주는 진공이 아니라 제5원소라 불리던 '에테르'라는 유체로 채워져 있고, 이 에테르가 행성에 부딪치며 행성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뉴턴은 동의하지 않았다. 물이나 공기와 같이 흐르는 유체에는 반드시 저항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흐르는 개울물에 손을 담그면 느껴지는 힘이 유체의 저항이다. 따라서 에테르로 가득한 우주 공간을 행성이 지나가려면 저항을 이기는 힘이 필요했고, 이 힘을 만유인력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 힘이 '닿지 않아도 작용하는 힘'이라는 점이었다. 과학계에선 격렬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주류 학계의 과학적 상식을 뒤집는 뉴턴의 대담한 가정은 그가 신비주의자였기에 가능했다. 케인스가 그를 '마지막 마술사'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심지어 뉴턴은 일생 연금술에 심취해 있었는데, 이 사실은 1936년 케인스가 뉴턴 미발표 저작물들을 소더비 경매에서 확보하면서 처음 알려지게 된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백형선

한편, 1930년대 세계를 휩쓴 대공황으로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언젠가는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믿었다. 이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신봉하는 경제학자들의 입장이기도 했다. 공황은 일시적 폭풍 같은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경기는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시장은 갈수록 엉망이 됐고, 그 원인을 분석하던 케인스는 뉴턴의 물리학에 기반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주장한 케인스 경제학의 탄생이다.

보이저호가 전해주는 메시지

케인스는 뉴턴 물리학의 유동성과 유체의 저항에 주목했다. 그는 공황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유동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덤 스미스 이래 고전경제학에 따르면 시장의 가격이 내리면 소비가 증가해야 하는데 문제는 경제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가격이 내려도 지갑을 닫는 현실이었다. 디플레이션이 지속될수록 소비는 더욱 수렁에 빠지게 된다. 케인스는 이를 '유동성 함정'이라고 불렀다.

케인스는 또 임금의 하방경직성을 유체 저항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생활이 궁핍한 노동자가 왜 싼 임금의 일자리를 택하지 않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불황으로 실업자가 늘면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 노동의 시장가격은 낮아져야 하지만 임금 하락에는 저항이 있어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으며 실업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위기 상황에서는 시장 기능이 마비되므로 정부가 나서서 인위적으로라도 유동성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책이 케인스의 불후의 명저 '고용, 이자와 화폐에 대한 일반이론'이다. '일반이론'이라는 명칭은 당시 과학계 최대 화두였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따왔다. 뉴턴 역학이 상대성이론의 특수한 형태이듯이 시장경제도 케인스의 일반이론의 특수한 형태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아인슈타인이 뉴턴의 역학을 부정하지 않았듯이 케인스 역시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예외적 상황에서 예외적 조치로 한정하였다. 케인스는 공황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사회주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자본주의를 구원했다.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행성 간 중력을 이용한 뉴턴 역학 덕택이지만, 보이저호의 전자 기기를 작동시키는 원자력전지는 상대성이론으로 만들어졌다. 케인스가 굳이 '일반이론'이라고 한 것은 물리학에 기반한 자신의 경제학이 시장경제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자유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진영과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진영이 맞서고 있다. 대립하는 두 진영의 주장을 어떻게 슬기롭게 조화시킬지는 오롯이 우리 인간들 몫이라는 것, 이것이 오늘도 먼 우주로 날아가고 있는 보이저호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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