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노예 성경'과 문재인 정부

입력 2019.11.22 03:14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워싱턴에 있는 '성경 박물관(Bible Museum)' 지하에는 최근까지 단 한 권의 성경을 위한 특별 전시장이 있었다. 고대 양피지 성경부터 전 세계의 진귀한 성경이 모두 전시돼 있는 곳에서 이 성경은 왜 이렇듯 특별한 취급을 받았을까.

이 성경은 1808년 런던에서 간행된 것으로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겉보기엔 일반 성경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 성경책은 창세기를 마친 뒤 바로 출애굽기 19장으로 넘어간다. 출애굽기 1~18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압제를 피해 이집트를 탈출하는 극적인 장면이 나온 부분이다.

이 책은 이른바 '노예 성경(Slave Bible)'이다.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할까 봐 성경을 가르치면서도 구약성경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빼고 만든 것이다. 백인 지배층은 성경을 통해 '사랑'이 아닌 '굴종'을 가르치려 했다. 노예 성경엔 구약의 약 90%, 신약의 50%가 삭제되거나 편집됐다.

예수 가르침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도 삭제됐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3장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와 같은 문구도 삭제됐고 요한계시록 등에서 묘사한 구원의 메시지도 거의 삭제됐다. 반면 베드로전서 2장의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라'는 문구나 누가복음 12장의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라는 부분 등은 들어갔다. 성경이 아무리 사랑을 가르친다 해도 권력자가 수정하면 순식간에 압제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 성경은 지금은 성경 박물관 2층 '아메리카 성경' 코너에 전시되고 있다.

이 같은 '진리의 편집'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바로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의 기이한 인권에 대한 이중 잣대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북한 인권침해를 비판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유엔인권결의안의 공동 제안국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2008년 이후 11년 만이다. 직접 북핵 협상을 하는 미국도 61개 공동 제안국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는 유엔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 빠진 뒤 "북한 인권 증진의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마 노예 성경을 만들던 성직자들도 "노예 선교에 대한 기본 입장엔 변함이 없다"면서도 "노예제의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주요 부분을 수정했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성직자들을 단호하게 심판했고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혹시 현대판 '노예 성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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