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종교 없지만… 10년째 종교 공부하는 癌박사

입력 2019.11.20 03:00

종교발전포럼 100회 박재갑 교수
"모든 종교의 장점 나누고 싶어… 각 종교인 뽑은 경전 최고 구절은 남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단 것"

"10년 동안 종교발전포럼을 진행하면서 각 종교인들에게 경전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을 뽑아달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닮은꼴이더군요. '내가 행복하려면 주변의 모든 것이 행복해야 한다'는 거죠."

박재갑(71)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19일 자신이 만든 백자(白磁) 필통을 보여줬다. 둥근 표면엔 불교의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라(自利利他)', 논어의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마태복음의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라는 가르침이 음각(陰刻)돼 있었다. 마태복음 구절은 최고의 계율, 즉 황금률(黃金律)로 불린다.

박재갑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암연구소 세포주은행 자신의 책상 옆에 논어 '기소불욕 물시어인'과 마태복음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는 구절을 도자기판에 새겨 걸어두고 있다.
박재갑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암연구소 세포주은행 자신의 책상 옆에 논어 '기소불욕 물시어인'과 마태복음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는 구절을 도자기판에 새겨 걸어두고 있다. /조인원 기자
박 교수가 창립한 '종교발전포럼'이 10년·100회를 맞아 21일 '인간 유전체와 종교'를 주제로 100회 포럼(강사 김종일 서울대 의대 교수)을 갖는다. 2009년 12월 창립한 포럼은 그동안 매월 셋째 목요일 새벽 6시 반부터 2시간 동안 조찬을 겸해 종교와 과학을 주제로 개신교, 천주교, 불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민족종교, 이슬람 등의 다양한 종교인과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를 들었다. 150여명의 회원들은 의사, 기업인, 종교인 등 다양하다.

서울대 의대 교수·암연구소 소장,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 등을 역임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암 연구 권위자인 박 교수가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종교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박 교수의 아버지는 형이 읽던 성경을 아궁이에 집어 던질 정도의 유교적 세계관을 가졌지만, 미션스쿨을 나온 어머니는 아버지가 연세 들어 힘 빠지자 다시 교회에 나갔고, 중매로 만난 아내는 천주교 신자였다. 그래도 가족 간 다툼 없이 지냈다. 어쩌면 보통 한국 가정의 모습이기도 하다.

종교 공부는 2009년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인문학에 대해 무식하다'는 그 나름의 콤플렉스도 있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 '유교 때문에 나라 망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종교도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해 말 환갑이 지난 나이에 '종교발전포럼'을 꾸린 것은 이런 깨달음을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는 종교가 없었기에 편견·선입견 없이 궁금한 주제를 설명해줄 강사를 섭외할 수 있었다. 벌써 내년 10개월 치 주제와 강사진도 이미 확정했다.

포럼 10년 동안 여러 종교를 공부했지만 그는 여전히 종교가 없다. "하지만 '내가 행복하려면 남을 행복하게 해주라'는 가르침은 확실히 얻었습니다. 내가 존재하려면 물, 공기, 아내 어느 것 하나 필요 없는 것이 없잖아요? 그 모두가 행복하게 존재해야 저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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