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공정한 사회 얘기하려면 '法의 영역'을 건들지 말라

입력 2019.11.18 03:16

정의의 기능은 사랑받는 자와 미움받는 자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 의식적으로 권력 줄이고 법·규정 따라 의사결정해야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맞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임기 후반기에도 일관성을 갖고 흔들림 없이 달려가겠다고 했다. 아주 좋은 말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더 많은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이란 정확히 무슨 뜻일까. 문재인 정부가 생각하는 정의와 공정은 무엇이며, 어떻게 추진할 계획일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부동산 정책에서 보듯 잘못된 진단과 부적절한 처방은 환자를 더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몇 가지 이슈를 생각해보자. 우선 정부가 살인 혐의를 받은 북한 주민 두 명을 북송한 일이다. 정부 당국은 범죄자인 탈북민의 입국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 결정은 공정하게 이뤄졌는가. 민주국가가 다른 민주국가에 누군가를 넘겨달라고 요구할 때 그 과정엔 경찰이 관여하고, 결정은 통상 법원이 한다. 이번 사례의 경우, 우리는 북한과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았고 북한의 사법 체계는 우리와 크게 다를 것이기 때문에 심의는 더욱 철저했어야 했다.

북한 주장대로 두 사람이 동료 어부를 살해한 게 사실이라면 그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불만스러운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요점은 그게 아니다. 사법 체계는 감정에 치우치면 안 된다. 정의의 기능은 사랑받는 자와 미움받는 자, 영웅과 범죄자가 공정하게 대우받도록 하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국민 99.9%가 찬성한다고 해도 이번 결정은 도덕적으로 잘못됐다. 사람에 대한 정의와 공정이 원칙이 됐어야 하는데 이번에 법은 정치적 목적에 종속됐다. 정부는 이들이 실제로 죄가 있는지 없는지 명확히 밝히지도 않은 채 이들을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둘째 사례는 32년 징역형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관한 것이다. 이달 초 MB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사면 반대 54%, 찬성 40%였다. 문 대통령은 찬성 비율이 어느 수준까지 높아지면 사면을 단행할 것이다. 이런 사면 관행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보일 순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전직 대통령이 무죄라고 믿든 유죄라고 믿든, 그가 97세까지 감옥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범죄에 그 정도 형벌이 적절치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지금 정부가 아니라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사면받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정의가 정치 권력자의 뜻대로 실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이런 형태의 정의에 익숙해 있긴 해도 그것이 '공정한' 정의는 아니다.

셋째는 조국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 사례다. 그의 혐의 중 하나는 딸의 대학 표창장을 위조하고 대학 총장 몰래 직인을 찍었다는 것이다. 지난주 수능을 치른 젊은이들에게 끔찍한 일이다. 좋은 대학의 자리를 부정행위로 빼앗긴다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성 세대들은 그런 교활함과 속임수가 익숙하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정상에 올랐다. 장관 후보를 지명할 때마다 표절, 병역 기피, 차명 투자, 위장 전입 같은 사례가 드러난다. 야망 있는 한국인들이 태생적으로 비도덕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정의 시스템이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형사 법정뿐만 아니라 경쟁에서 승자가 선택되는 방식, 사람을 고용하고 평가하는 방식이 너무나 자주 불공정하다.

이런 사회는 한쪽 팀 주장이 심판의 선배라서 심판이 그 팀을 편드는 축구 경기 같다. 이기는 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승리를 즐기고 불의에 눈감는다. 지는 팀에 있다면 평생 피해 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 할 수 있는 선택은 규칙을 어기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2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심판을 바꾸거나 규칙을 바꾼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이고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의 법규범과 문화가 달라져야 하고, 품위와 공정은 보상받고 교활함은 공개돼 배척당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정치권력은 법의 영역에서 손을 떼야 한다. 둘째, 정부와 기업의 의사 결정은 민심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법과 규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의식적으로라도 자신의 권력 행사를 줄이고, 후임 정권도 기꺼이 뒤따를 수 있는 좋은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정적(政敵)들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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