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듭된 전방위 요청에도 'No'… 위기의 韓美동맹

입력 2019.11.16 01:32

[지소미아 종료 D-7… 각자 하고싶은 말만 한 韓·美]

美국방, 안보협의회서 '전시' '위협' 표현 써가며 지소미아 압박
文대통령 "수출규제한 건 일본, 美가 日입장 바꾸게 설득하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시한을 일주일 앞둔 15일 오후 방한 중인 미군(美軍) 수뇌부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지소미아가 유지되어야만 한다고 했다. 이들은 앞서 서울 국방부에서 열린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도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내세워 지소미아 파기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우리 군은 "일본이 수출 규제를 풀지 않으면 파기 철회는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청와대와 정부가 내부적으로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만큼, 사실상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양측이 각자 하고싶은 말만 한 셈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지소미아를 단순히 한·일 간 정보공유 차원을 넘어 중국에 대항하는 한·미·일 3각 안보체제의 '상징'으로 간주해 왔다"며 "미 국방장관까지 와서 한 요청을 단칼에 자른 것은 한·미 동맹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지소미아 문제를 향후 방위비 분담금과도 연계시키면서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지소미아 두고 韓美 간 평행선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날 SCM이 끝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지소미아가 갱신이 안 되고 만기가 되도록 방치를 하게 된다면 효과가 약화된다"며 "(북한·중국 등) 공통의 위협이나 도전 과제에 같이 대응할 수 있도록 (3국 간) 관계를 정상 궤도로 올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작심한 듯 '전시 상황' '위협(threat)' 등의 표현을 쓰면서 "(한·일) 양측 간 이견(異見)을 좁힐 수 있도록 (정경두 국방장관에게) 촉구했다"고 했다. 앞서 에스퍼 장관은 지난 13일(현지 시각) 한·미 안보협의회 참석을 위해 서울로 향하던 전용기 안에서 "나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소미아는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마크 에스퍼(맨 왼쪽) 미 국방장관과 면담 전 인사를 하고 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문 대통령에게 지소미아 유지를 요구했지만 문 대통령은 “일본이 먼저 수출 규제를 철회하지 않으면 파기 철회는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왼쪽부터 에스퍼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통역 담당인 채경훈 국가안보실 행정관,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마크 에스퍼(맨 왼쪽) 미 국방장관과 면담 전 인사를 하고 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문 대통령에게 지소미아 유지를 요구했지만 문 대통령은 “일본이 먼저 수출 규제를 철회하지 않으면 파기 철회는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왼쪽부터 에스퍼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통역 담당인 채경훈 국가안보실 행정관, 문 대통령. /연합뉴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도 박한기 합참의장, 야마자키 고지 일본 통합막료장과 한·미·일 합참의장 화상 회의를 갖고 3국 간 군사 협력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라고 했지만 외교가에선 "미국 정부가 공개 압박을 넣은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정경두 장관은 "일본이 '안보 상황의 문제로 신뢰할 수 없다'면서 수출 규제 조치를 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많은 심사숙고 끝에 이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우리가 무작정 지소미아 종료를 번복한다면, 이는 당시의 결정이 신중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고 했다.

'결정판'은 문 대통령의 대답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에스퍼 장관을 만나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며 '파기 당시 원칙'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도 (일본이 입장을 바꿀 수 있도록) 역할을 해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서 비롯된 만큼 '원인 제공자'인 일본을 설득하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는 내년 4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의 총선이 예정돼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 요구도 신경 쓰이지만,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번복할 경우 핵심 지지층의 반발이 일 수 있다는 점을 청와대는 더 우려하는 분위기"라며 "(정부는) 당초 결정을 바꾸기보다는, 파기 결정을 내리고 일본이 경제 보복을 철회할 경우 그때 다시 협정을 맺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지소미아 파기시 '후폭풍' 경고 이어져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를 파기할 경우 한반도 유사시 등에 막대한 후폭풍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지소미아 파기는 자칫 한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기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정보 공유의 방식은 얼마든지 있지만 향후 (지소미아 파기로) 전반적인 한·일 공조 관계가 약화돼 유사시 군사적 위협에 직면할 경우 북한과 중국에만 도움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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