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두 종류의 인권과 생명

조선일보
입력 2019.11.16 03:15

문재인 대통령은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자주 눈물을 흘렸다. 2017년에도 유가족 2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2시간 동안 위로하며 눈물을 훔쳤다. "늦었지만 정부를 대표해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참사 미수습자 유골이 발견됐다는 기사에 "가족의 품으로 하루빨리 돌아오길 기원합니다"라는 댓글도 달았다. 어느 유가족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용기를 내라"고 다독였다.

▶그런 대통령이 북한의 서해 도발로 순국한 우리 장병을 추모하는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는 2년 연속 불참했다. 제2연평해전·천안함·연평도에서 목숨을 잃은 국군만 55명이다. 해병대 기동 헬기 추락 사고로 5명이 순직했을 때도 영결식 직전까지 조문 인사를 보내지 않았다. 보훈처는 북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에 대해 전상(戰傷)이 아닌 공상(公傷) 판정을 내리기까지 했다. 이제 북과 싸우다 목숨을 잃으면 전사(戰死)가 아니라 공사(公死)가 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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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생명을 강조하는 이 정권이 김정은 폭정에 희생된 북 주민을 보듬는 모습은 본 기억이 없다. 중국에서 강제 북송 위기에 놓인 탈북자를 도와달라는 피 울음에도 귀를 닫는다. '북 인권'은 북에 쌀을 주려고 할 때나 등장한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탈북자 단체 억압을 비판하는 지경이다.

▶북에 억류됐던 미 대학생 웜비어를 17개월 만에 만난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건강했던 아들이 초점 없는 눈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짐승처럼 울부짖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영혼 없는 괴물이 돼 있었다"고 했다. 미 의료진은 "웜비어 치아가 펜치로 재배열한 듯 변형됐고 발에 큰 상처가 있었다"고 했다. 끔찍한 구타와 전기 고문의 증거라는 것이다. 웜비어는 어머니 품에 안긴 지 6일 만에 숨졌다.

▶청와대가 22일 방한하는 웜비어 부모의 문 대통령 면담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대통령 일정이 빡빡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10분만 내면 손잡아주고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지 않나. '일정' 운운은 거짓말이고 김정은이 화낼까 봐 눈치 보는 것이다. 생명과 인권보다 더 중요한 것이 김정은 쇼다. 그러고 보니 이 정권의 인권과 생명에는 두 종류가 있다. 우리 국내에서 인권과 생명을 내세워 상대편을 비난할 수 있으면 민변, 전교조, 인권단체들이 다 들고 나선다. 그런데 북한 정권이 인권과 생명 때문에 곤란한 일을 당할 것 같으면 일제히 침묵한다. 비명에 자식을 잃은 부모까지 차별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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