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제 인권 규범 위반 피의자로 몰린 대한민국

조선일보
입력 2019.11.16 03:19 | 수정 2019.11.18 10:59

정부가 북한 선원 두 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 송환한 것에 대해 유엔 인권최고대표 사무소가 "두 사람이 고문과 처형을 당할 심각한 위험에 처한 것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달 말 방한 예정인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은 "앞으로 취할 조치에 대해 관련 정부들과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관련 정부란 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 정부를 지칭한 것이고 이미 연락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인권 단체인 국제 앰네스티는 "한국 정부가 유엔 고문방지협약의 강제 송환 금지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이번 사건을 국제 인권 규범 위반으로 규정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권 보호 원칙을 어긴 피의자로 몰려 조사까지 받게 된 것이다. 수십 년 전 군사정권 시절에나 겪었던 수모를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 시대에 다시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북한 선원들이 동료 승선원 16명을 살해했기 때문에 추방했다고 밝혔다. 이런 중범죄자들은 법률상 보호 대상이 아닌 데다 우리 사회에 받아들일 경우 국민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 입장에 동의하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과 같은 배를 타고 3개월 이상 생활해 온 동료를 열 명 넘게 살해한 사람들까지 인권을 보호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법에 따른 재판을 통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문명사회의 양식이다. 박해의 공포가 존재하는 곳으로 억지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강제 송환 금지 원칙이 국제사회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북한 같은 나라로 선원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재판 없이 고문받고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국제기구와 인권 단체들이 정색하고 한국을 비판하는 데는 이번 사태를 둘러싼 정부의 미심쩍은 행태도 한몫했을 것이다. 정부는 북한 선원들의 나포 사실 자체를 쉬쉬하다가 추방 절차가 끝난 후에야 공개했다. 심지어 북한의 송환 요청조차 없었다고 한다. 통일부 장관은 북한 선원들의 강제 송환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들이 귀순 의사가 없었던 것처럼 거짓말까지 했다.

정부는 올해 북한 인권 결의안 공동 제안국에서 빠졌다. 2008년 이후 작년까지 11년 동안 줄곧 참여해왔던 관례를 깨뜨린 이유는 짐작이 간다. 결의안이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가장 책임 있는 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한 대목이 걸렸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 인권에 가장 책임 있는 자는 김정은이다. 정부는 2016년 제정한 북한인권법에서 정하고 있는 북한인권재단 설립과 북한 인권 국제협력대사 임명도 집권 2년 반이 넘도록 않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이번 달 부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김정은 쇼'를 다시 한 번 해보겠다는 실낱 같은 기대 때문이라고 한다. 앞으로 김정은의 전략에 따라 언제든 쇼는 다시 벌어질 수 있다. 그 '전략'은 한반도가 핵 공포에서 해방되는 길이 아니라 그 반대이고, 북한 주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길이 아니라 그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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