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키오스크 앞에서

조선일보
  • 송은혜·2019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입력 2019.11.15 03:02

송은혜·2019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송은혜·2019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2000년대 초 한양대 일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전설의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그녀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매장에 앉을 자리가 없다고 했다. 근처 중학교에 다니던 우리는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컵 떡볶이를 먹으며 그녀를 상상했다. 우리도 그녀에게 가서 떨지 않고 주문을 해보리라 다짐하면서!

간단한 끼니를 해결하기에 패스트푸드만 한 것이 없어서, 종종 햄버거를 사 먹는다. 내가 긴 메뉴 이름을 더듬거려도, 뚱한 표정의 아르바이트생은 금방 알아차리고 주문을 넣었다. 불고기버거 세트 둘, 아이스크림에 치즈스틱 추가한 고객을 부르면 손까지 번쩍 들고 나간다. 흡사 교장선생님에게 상장을 받는 학생처럼!

그런데 올해 들어서 햄버거 매장 풍경이 생경해졌다. 아르바이트생과 말 섞을 일이 없어졌다. 나를 상대하는 건 키오스크 화면. 판매율에 따른 인기 메뉴, 추가 주문은 안 하냐고 묻는 말투, 어쩌다 에러가 걸려 버벅대는 기계 앞에서 나는 한없이 무력해진다. 내 뒤로 줄을 선 사람들은 채근하는 눈빛을 보낸다. 카운터 직원들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기계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걸 사용할 줄 모르는 너의 잘못이란 투로 사용법을 일러준다. 마치 내가 고장 난 사람 같아서 얼굴이 붉어졌다.

햄버거는 물론 아이스크림, 고속도로 휴게소, 박물관 매표소까지…. 요즘 나는 키오스크를 마주 보고 서 있다. 그 앞에서 방황하는 손가락을 들키지 않기 위해 서둘러 주문한다. 키오스크 앞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가 감기 기운이 있으니 따뜻한 커피로 바꾸겠다는 말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행여나 손가락으로 잘못 누른 메뉴가 나와 당황한 적도 있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결국 적응할 거다. 그럴수록 느린 아날로그가 그리워지는 건 나뿐일까?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 뜨개질하는 사람을 본다. 봄이 떠오르는 노란 색깔 실이다. 스웨터일지 조끼일지 모르지만, 새삼 뜨개질하는 손가락이 참 위대해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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