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韓·中 학생들 '홍콩 사태' 몸싸움

입력 2019.11.14 03:20

中학생 40여명 대자보 훼손 시도… 한양대생 10여명과 4시간 대치
"여기가 공산국가인줄 아나" "내정간섭 말라"… 韓中 대학생 충돌 확산

고려대생, 中유학생이 대자보 떼거나 찢지 못하게 조 짜서 지켜
"언론자유 무시, 추방해야" "한국에 뜨거운 맛을" 온라인서 설전

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인문대 1층 로비에서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 각각 수십명이 4시간 넘게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오후 1시쯤 이 학교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회원 10여명이 홍콩 시위 지지 내용의 대자보 2장을 붙인 게 발단이었다. 지나가던 중국 학생 5명이 이를 두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곧 대자보를 떼기 위해 달려들었고, 한국 학생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밀고 잡아당기는 몸싸움을 벌였다. 중국 학생들은 일단 대자보를 떼는 대신, 해당 대자보 위에 오성홍기(중국 국기)나 '김정은 만세' '독도는 일본땅' 등을 적은 메모지를 덕지덕지 붙였다. 그러고도 대치는 이어졌다. 중국 학생 수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 오후 5시엔 40여명이 됐다. 대치는 경비원이 중재에 나서면서 끝이 났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둘러싼 한국 학생과 중국인 유학생 간 충돌이 대학가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대자보 문제로 시작한 갈등이 상호 비방과 신상 털기로 이어지고, 일각에선 몸싸움이나 형사 소송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왜 손을 치고 가세요?"(한국인 여학생)

"내가 언제 손을 쳤어요? 난 종이만 쳤어요."(중국인 남학생)

13일 오후 2시쯤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서 이런 실랑이가 붙었다. 이날 저녁 열리는 '홍콩 민주 항쟁 토론회' 홍보 전단을 나눠주던 한국 학생들이 중국인에게까지 전단을 건넸다가 벌어진 일이다. 일부 중국인 유학생들은 전단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찢거나, 구겨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대자보 떼려는 중국 유학생, 막아선 한국 학생 - 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인문대 1층 로비에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지키려는 한국 학생들(오른쪽)과 이를 떼어내려는 중국 학생들(왼쪽)이 대치하고 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양측 간 대치는 약 4시간 동안 이어졌다.
대자보 떼려는 중국 유학생, 막아선 한국 학생 - 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인문대 1층 로비에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지키려는 한국 학생들(오른쪽)과 이를 떼어내려는 중국 학생들(왼쪽)이 대치하고 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양측 간 대치는 약 4시간 동안 이어졌다. /홍콩의진실을알리는학생모임
이후 중국 유학생 커뮤니티에는 "저녁에 열리는 홍콩 토론회를 파괴하러 갈 친구들을 모은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소식은 한국 학생 커뮤니티로 전해졌고, 주최 측은 '토론회를 지켜달라'는 호소문을 냈다. 그 결과 토론회에 한국·홍콩 학생 200여명이 몰렸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학생 몇 명이 토론회장 주변에 나타났지만, 한국 학생 숫자가 워낙 많았던 때문인지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갈등은 여러 대학에서 표출되고 있다. 연세대에서는 12일 중앙도서관 건물 벽에 붙어 있던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가 찢겨 나가면서,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가 이틀째 들끓어 올랐다. "언론 자유를 무시하는 중국인들을 추방해 달라" 등의 글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이 학교에선 홍콩 지지 현수막도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총 3차례 찢겨 나갔다. "가위를 가진 학생들이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밝혔고, 현수막을 떼며 '원 차이나(One China·하나의 중국)' 구호를 수차례 외쳤다"는 연세대 재학생의 목격담이 나왔다. 현수막을 붙였던 단체는 "현수막 훼손 사건을 수사해 달라"며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한국 대학생 vs 중국 유학생 온라인 설전 정리 표

11일 고려대에서는 '홍콩 항쟁에 지지를!'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찢긴 상태로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다. 일부 대자보는 '계란 테러'를 당했다. 이에 한국 학생들이 조(組)를 짜서 대자보 앞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 학생들을 향해, 지나가던 중국 학생들이 "내정 간섭 말라"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중국 학생 2명은 대자보 앞을 지키고 서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보초 서는 학생과 응원 글을 붙이는 한국 학생의 얼굴을 촬영했다.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13일 성명을 내고 "우리 대학은 구성원이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이라며 "(대자보 훼손은) 학생 사회가 지금까지 지켜온 자유롭고 민주적인 토론 문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러자 중국 학생 측은 '맞불 대자보'로 응수했다.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한국인이 홍콩 독립을 부추기는 것은 중국 민족 내부를 파괴하는 행위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작성자는 '고려대 경영대에 재학 중인 중국 유학생 레아'라고 스스로를 밝혔고, 전화번호까지 남겼다.

온라인 설전(舌戰)도 격화하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엔 '고려대 따위 대학이 3위권이고, 이딴 청년들이 한국 최고의 우수한 청년들이라는 사실에 실망했다' '한한령을 찬성한다.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으로 유학 오지 말자. 이런 나라에 돈을 쓰는 것 자체가 사치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 학생들도 대학 커뮤니티에 '대자보를 훼손하다니, 여기가 공산 국가인 줄 아느냐' '그 높은 애국심으로 학업 접고 귀국해라'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짐승 수준' 등 격한 글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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