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교육부 차관과 2600억원

입력 2019.11.14 03:12

유소연 사회정책부 기자
유소연 사회정책부 기자

박백범 교육부 차관에게 지난 11일 들었던 말은 오랫동안 잊히질 않을 것 같다. 그날 오후 세종시 교육부 청사에서 기자 간담회가 있었다. 교육부는 이날 공식적으로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2025년에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발표했다. 연간 2600억원이 든다고 했다.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과 사용처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어진 저녁 자리에서 박 차관은 기자가 있는 테이블로 오더니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질문을 많이 하던데) 해결 잘됐어요? 쩨쩨하게. 돈이 55조(지방교육재정교부금) 있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2600억원을 어떻게 마련해서 어디다 쓰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쩨쩨하다'는 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날 교육부는 59개 고교를 한꺼번에 폐지하고, 일반고로 바꾸는 데 들어갈 예산 규모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 정부가 세금 퍼부어서 일자리도, 성장도, 분배도 다 하겠다고 하지만, 그래서 내년 예산은 역대 최고로 치솟아 500조원이 넘지만 이 정부 공무원이 2600억원을 푼돈으로 알 정도로 배포가 커진 줄은 몰랐다.

이어진 박 차관의 말은 더 기가 찼다. 그는 난데없이 "결혼은 하셨느냐. 빨리 하시고 애를 낳아보라"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예산이 얼마가 들지 명확히 말해달라"는 질문에 이런 답이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미혼인 주제에 무슨 질문이 그리 많으냐는 말로 들렸다. 결혼하지 않은 여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접하는 편견은 숱하다. '미혼 여기자는 교육을 모를 것'이라는 시선을 이겨내는 일은 아직도 버겁다. 하지만 교육부 차관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정말 몰랐다.

박 차관은 "(자녀가 생기면) 여럿이 어울리는 교육을 하고 싶은지, 초록이 동색(同色)인 사람끼리 하고 싶은지 묻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그게 특권 교육이다"라고도 했다. 미혼 여성은 교육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고, 자식을 자사고·외고·국제고에 보낸 부모들은 '여럿이 어울리는' 좋은 교육을 외면하고 특권 교육을 하려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하겠다는 것인가. 하루가 지난 뒤 박 차관은 "학부모의 심정으로 허심탄회하게 한 말"이라는 사과문을 냈다. 그가 정말 아이들 미래 걱정에 뒤척이는 부모들의 마음을 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교육은 한 민족과 나라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2600억원의 열 배, 백 배라도 쓸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낸 세금이 귀하고 소중한 줄 안다면 예산이 넘치는데 뭐 그렇게 쩨쩨하게 구느냐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교육부 차관 자리에 앉아 있다.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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