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유행 지난 '대통령 골프'가 떠올랐다

입력 2019.11.14 03:13

나랏돈 무한정 못 나눠 써 "재정 쌓아두면 썩어" 발상
달러 쌓아놓지 못해 겪은 외환 위기 참사 벌써 잊은 듯

정성진 산업2부장
정성진 산업2부장

1~2년 전쯤 골프장에서 반짝 유행한 게임이 있었다. 이름은 '소주성 게임' '정부 게임' '대통령 게임' 등 다양했다. 방식은 이렇다. 4명이 1000원짜리 10장이나 1만원짜리 10장을 세금처럼 내서 펀드를 만든다. 홀마다 버디를 한 사람에게 5장을, 파는 4장, 보기는 3장을 준다. 그보다 못한 사람도 '공정'과 '형평'을 위해 2장을 '분배'한다. 모두 즐거워한다.

몇 홀 치면 자금이 바닥난다. 가장 많이 딴 사람이 가진 돈을 다 펀드에 낸다. 짜증을 낸다. '공돈'이 생긴 나머지 세 명은 웃는다. 곳간이 다시 비려고 할 때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토해 낸다.

후반엔 아무도 웃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러 못 친다. 재미가 없어서, 한번 하고 나면 다시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파이를 키우는 성장보다 있는 파이를 여러 사람에게 나누는 분배를 강조하고, 돈을 벌려는 기업가보다는 돈을 달라는 노조를 위하고, 나라 재정을 채우기보다는 비우려는 정책을 비꼬고 있다.

'설마 정부가 그 정도까지야 가겠나'라고 생각해 잊고 있던 이 게임을 다시 상기시킨 사람은 "쌓아 두기만 하면 썩어 버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려울 때 쓰라고 곳간에 재정을 비축해두는 것"이라고 한 청와대 대변인이었다. 나랏돈이 공돈이라고 착각하지 않으면 이런 발언이 나올 수 있었을까.

어려운 상황에 몰린 국민에게 돈을 주는 등 직접적으로 곳간을 푸는 확대 재정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부작용도 확실하다.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지 말고 정말 절제하며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뜻이다. 별 노력 안 해도 돈을 주고 가만히 있어도 의료 혜택을 늘리면, 누구도 더 일을 안 하려고 하고 필요도 없는 진료를 받으려고 한다. 인간 본성이 그렇다. 고리대금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듯, 세월이 지날수록 필요 재원은 계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폭증한다. 자식과 손주들에겐 빚 덩이를 떠넘긴다. 재정 지출은 금리 조절 같은 금융 정책에 비해 눈에 보이는 효과가 확실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사회의 자원을 잡아먹는 역효과도 가져온다. 민간 기업에 취직할 인력이 쓸데없는 풀 뽑기만 하기 때문이다.

세금이 모자라도 재정 정책을 쓰겠다는 정부는 국채를 발행한다. 실제로 우리 정부도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부는 나라 살림 지표인 통합재정수지가 올해 적자가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국가가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접어드는 게 다음 단계다. 더 심각해지면 국가 부도다. 이런 국가는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다. 대출해준 국가는 빚을 일정 부분 탕감해준다. 해당 국가 국민은 자산이 휴지 조각으로 바뀌고 직장을 잃는 대가를 치르고, 나라만 겨우 유지한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만 이러는 게 아니다. 독일, 러시아, 그리스도 디폴트 선언 경험이 있다. 그만큼 재정 관리는 어렵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지경까지 나면 국가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다. 아침밥 먹듯이 다른 나라를 향해 미사일을 쏘는 북한이 옆에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 영공을 자기 멋대로 헤집고 다닌다. 한국 정부는 군대를, 그것도 강군을 유지할 돈을 충분히 갖고 있어야 한다.

논리가 너무 나갔다고? 조선은 1882년 군인에게 월급을 못 줬고 그때부터 30년도 안 돼 나라를 빼앗겼다. 너무 오래전이라고? 한국은 20여 년 전 나라 곳간에 달러를 쌓아두지 못해 외환 위기를 겪었다. 한국에 재정 건전성은 생존 그 자체다. 제발 건드리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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