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한국엔 '대학'이 없다

조선일보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입력 2019.11.13 03:17

본래 '대학'은 학문공동체
한국은 당근·채찍 쥔 정부… '대학교' 쥐락펴락
한국선 폴리페서 나오고 일본에선 노벨상 나와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지난달 서울대에 대한 국정감사가 있었다. 국감과 무관한 삶을 일종의 직업적 보람으로 생각해 왔는데,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원활한' 국정감사를 위해 교내 차량통제를 실시한다는 공지 때문이었다. 수업과 연구를 방해하지 않는 '조용한' 국감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국감을 앞둔 지난 몇 달 동안 각종 자료 요청이 개별 교수들에게 쇄도했다. 자녀 입학 및 채용 특혜 사례, 미성년 저자 포함 연구물 현황, 부실 학회 참여 경험 등을 자진 신고하라는 것이다.

대학에 대한 통제와 간섭은 이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다. 고등교육법이나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등이 점점 더 대학을 옥죄는 가운데 지난여름에는 유례없는 '감사 태풍'이 주요 사립대를 강타했다. 소위 '김영란법'에 따라 교수 사회가 잠재적 우범지대로 바뀐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출석 확인이나 성적 관리도 더 이상 교수 개인의 온전한 재량이 아니다. 학생 지도나 연구 윤리 등 직무 연관 교육 프로그램의 반(半)강제적 이수 또한 크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이런 처지에는 자업자득의 측면이 많다. 시나브로 비리와 부패의 온상처럼 되어버린 대학의 입장에서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우리나라에는 처음부터 자유와 자율을 생명처럼 여기는 그런 의미의 대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당초 국가로부터의 개입을 자초하고 통제를 자청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대학'의 본래 의미에 부응하는 곳이 아니라 초·중·고등 '학교'의 기계적 연장에 가깝다.

대학과 학교는 같은 듯 다르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지덕체(智德體)를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기관이다. 이에 비해 대학의 사전적 의미는 프로페셔널들의 학문 공동체다. 대학의 출발은 동료(colleague)이며, 동료들의 집합이 칼리지(college)가 되고, 칼리지가 모여 대학(university)을 이루는 것이다. 외부의 간섭이나 규제 대신 자치와 자결(自決)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에서 대학은 학교와 격이 다르다. 바로 그게 선진국 명문대학들의 존재 방식이다. 세상에 대학을 대학교라 부르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한자문화권에서도 도쿄대학이고 베이징대학이며, 국립타이완대학이다. 일본에 더러 있는 대학교는 방위대학교나 기상대학교와 같은 교육훈련시설이다.

우리나라가 유독 '대학교'라는 간판을 사용하게 된 데는 경위는 불분명하다. 구한말에 서양과 일본의 대학을 '대학교'로 표기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학교라는 명칭이 보편화된 것은 분단 이후 남북한이 최고의 대학을 만들고자 경쟁하는 과정에서였다. 세계적 기준에 비추어 '대학'이라는 명칭으로 충분할 텐데 남북한은 각각 다른 간판을 내걸었다. 그 결과가 서울'대학교'와 김일성'종합대학'이다. '대학교'도 그렇지만 대학 교명이 '종합대'인 경우도 외국에는 잘 없다. 어쨌든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거의 모든 대학이 대학교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대학교라는 한국식 작명에는 또 다른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에 학교라는 말을 합성하면 국가가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명분이 상대적으로 많아지기 때문이다. 일찍이 '국립서울대설립안(국대안) 반대운동'이 제기했던 대학에 대한 국가주의적 관점 말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우리나라 대학이 정부의 간섭이나 정치적 시류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양상은 예고된 비극일지 모른다. 이에 비해 연구년차 현재 머물고 있는 이곳 일본 도쿄의 히토쓰바시(一橋)대학은 사뭇 대조적이다. 제국대학에서 출발한 국립대학임에도 일장기를 걸지도 않고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지도 않는다. '리버럴리즘' 학풍 때문이다. 동일본대지진과 법인화를 계기로 정부의 입김이 세진다는 볼멘소리가 있긴 하지만 자치권과 자율성에 대한 대학 구성원들의 신념은 오히려 더 강해지는 분위기다.

얼마 전 서울대에 재직하다가 재계약을 포기하고 떠난 어떤 외국인 교수는 자신의 눈에 서울대는 모든 학과가 정치학과이고 모든 교수가 정치학자로 보인다고 말한 적 있다. 현실 참여이든, 학내 권력이든, 연구비 지원이든, 온통 정치판이 되어버린 듯한 우리나라 대학을 꼬집은 것이다.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든 정부나 정치권이 대학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서 '폴리페서'의 양산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이에 반해 일본에는 그런 단어조차 없다. 대신 존재하는 것은 학문을 천직으로 하는 학자들의 동류의식과 동업 정신이다. 또한 그것을 최대한 존중하는 근대 문명사회의 전통이다. 올해에도 일본은 노벨상을 탔다. 폴리페서가 수두룩한 우리나라는 '노벨 정치상' 제정을 기다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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