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검찰·경찰 취재가 막히면…

조선일보
  •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입력 2019.11.09 03:00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요즘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취재를 하려면 경찰이나 검찰에 전화를 해야 하는데, 최근엔 번번이 퇴짜를 맞는 중이다. 검찰 개혁과 함께 등장한 '피의사실 공표 금지' 조항 때문인데, 쉽게 말하자면 이젠 경찰이나 검사에게 사건 내막을 듣긴 힘들어졌단 뜻이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일선에선 빡빡하지 않게 적용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방송 제작진이 "사건의 사실관계만 좀 확인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 수사에 지장이 없는 한 제한된 내용을 알려주곤 했다. '죄가 확정도 안 된 피의자가 인권을 침해당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지만, 사건 프로그램 제작진으로서 다른 면도 봐야 한다.

먼저 사건 초기 잘못 알려진 내용 때문에 오해를 받는 피해자들에게 사실을 바로잡을 기회를 줘야 한다. 살인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말이 없고, 가해자만 자기변명을 늘어놓는다. "바람을 피워서 그랬다" "먼저 나를 때려서 그랬다" 등등, 마치 피해자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듯 떠벌린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런 가해자의 주장이 확인 없이 기사화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경찰이나 검찰 심문 과정에서 진짜 이유가 밝혀지곤 하는데, 이를 수사기관이 언론을 통해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가해자의 거짓말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검찰·경찰 취재가 막히면…
CCTV 영상도 오해를 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얼마 전 자신이 무고하게 폭행을 당했다는 인터넷 게시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증거라며 당사자가 올린 영상을 보면 분명 일방적으로 맞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경찰이 CCTV 앞뒤를 확인해보니, 사실은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게 밝혀졌다. 이 영상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폭행범이란 일방적인 비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오해를 풀 수 있었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무죄 추정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매일 사건 아이템을 다루는 제작진으로서, 피해자가 오해를 받는 보도만은 막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수사기관에서 사건 설명이나 CCTV를 얻을 수 없다면, 앞으론 어떻게 진실을 보도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오늘의 가장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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