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처럼 강릉서도 영화 바람 일으킬 것"

조선일보
입력 2019.11.09 03:00

김동호 강릉영화제 조직위원장
국내외 영화계 인사 강릉行 러시
"세계서 사람 데려오는 게 내 일… 프랑스 칸영화제처럼 만들겠다"

"아휴, 안 하려고 했죠. 강릉시장이 두 번이나 집으로 찾아와서 맡아달라고 졸랐어요. 그 열성과 강권에 못 이겨 그만 깜빡 넘어간 거죠." 8일 개막한 강릉국제영화제의 김동호(82) 조직위원장이 말끝에 소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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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 8일 오후 강원도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김동호(가운데) 조직위원장이 배우 안성기(왼쪽), 김한근 강릉시장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계에서 김동호 위원장은 잉걸불 같은 사람으로 불린다. 항상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이지만, 막상 일을 맡으면 불꽃처럼 누구보다 맹렬하게 타오른다. 1996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아 15년 동안 일했다. 아시아의 작은 영화제에 불과했던 부산영화제를 세계적인 규모로 키워내는 데 누구보다 기여한 그다. 당시 그가 해외 유명 인사들을 부산에 모시기 위해 3등석 비행기를 셀 수 없이 타고 다니며 외국을 오간 것, 퀵 오토바이까지 타고 다니며 부산 곳곳의 사람들을 만난 것, 엄청난 주량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영화계를 평정한 것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2016년 부산영화제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 내홍을 겪었을 때도 김 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1년 남짓 조직위원장을 다시 맡아 부산영화제를 안정시키고 물러나며 그가 남긴 말은 "영화제 위원장은 다시 안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강릉국제영화제를 새롭게 이끌게 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강릉이란 도시가 날 붙잡은 것도 있다"고 했다. "풍광이 참 아름답고, 허난설헌과 허균을 낳은 문향(文香)의 도시인 데다, 이곳 사람들이 참 따끈따끈해요. 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호텔도 늘고 아트센터까지 생겼으니 제대로 된 영화제를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덕장(德將)으로 이름난 그가 나서자, 영화제는 금세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김홍준 감독이 예술감독을, 배우 안성기씨가 자문위원장을 맡아줬다. 김 위원장의 이름만 듣고 바로 강릉에 오겠다고 한 해외 영화계 인사도 여럿이다. 토론토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피어스 핸들링, 홍콩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윌프레드 웡,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키릴 라즐로고브 등이다.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김 위원장과 만나고 바로 강릉에 오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사람 데려오는 게 내 일이니, 난 그걸 성실히 할 뿐"이라고 했다.

강릉 지역 주민들이 지지하는 축제로 만들기 위해, 강릉의 크고 작은 시민단체와 영화인·문인까지 일일이 만난 것도 김 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곳 주민들이 보여준 열정은 부산에서도 못 느꼈던 것"이라면서 "주민들끼리 영화제 티켓을 세 장씩 예매하는 운동까지 벌여줬다. 개·폐막 작품은 예약 6분 만에 매진됐고, 영화제 티켓도 18%가량만 남았다"고 했다.

이만하면 만족할 법한데, 그의 포부는 생각보다 크다. "영동 지역의 독립영화인과 예술가들이 제대로 된 창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도 시작하겠다. 강릉에서 영화의 바람이 다시 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반찬 가짓수만 많은 한정식이 아닌, 좀 작아도 정갈하고 특색 있는 도시락 같은 영화제로 완성시키려 한다"고 했다. "프랑스 칸도 작은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영화팬이 모두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됐죠. 이젠 강릉을 그렇게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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